『그렇지 않아도 고개를 내려오면서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갑자기 손에 낀 장갑이 휠체어 바퀴에 튀어나온 못에 걸려 감고 넘어가는 바람에 나도 같이 앞으로 나딩굴고 만거야』
『세상에…그래서 어떡하셨어요』
『어떡하긴、개구리 엎어지듯 신작로 바닥에 달싹 엎어졌고 휠체어가 벌렁 뒤집혀 내 위에 얹혀있었으니 참으로 가관이었지』
『그래서요』
『어두운 밤이라 지나가는 사람은 없고 자동차는 두 눈에 커다란 불을 켜고 괴물처럼 질주해오며 마치 나를 깔아 뭉갤것만 같아 눈을 꼭 감아 버리곤 했지.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도움으로 일어날 수는 있었지만 신작로 바닥에 엎어진 채 캄캄한 밤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병신의 비애같은 것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것 같아 몹시 서글퍼지더구먼. 심봉사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꼴이었다고 나할까』
『그런데 왜 바로 말씀 안하시고 여태까지 내버려 두셨어요. 이제 병원문도 다 닫았을텐데 어떡하란 말예요』
『괜찮은 줄 알았지. 괜찮은데 괜히 당신한테 말해 가지고 당신 속상하게 만들고 나 운동나가면 불안하게 만들 것까지 없지 않아』
저는 남편과 살아오면서 가슴 아픈 일、속상하는 일이 너무도 많았지만 이때처럼 저의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느껴 본적도 드문 것 같았읍니다.
떨리는 손으로 부어오른 남편의 무릎에 약을 발라주고 차마 남편 앞에서 눈물을 보일수가 없어 저는 부엌으로 나가 부뚜막 위에 퍼질르고 앉아 너무 속 이상해 실컷 울었읍니다.
휠체어와 함께 나딩굴어 신작로 바닥위에 엎어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고만 있었을 남편의 처절한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너무 남편이 불쌍했으며 아무런 일이없이 살아간다해도남편에게는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한스러운삶인데、남과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없다 할지라도 그 어떤 시련은 없어줘야 하련만은 또 다른 슬픔을 맛보아야 한다는데 더욱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읍니다.
정상적인 건강을 가진 사람 같으면 저토록 무릎이 부었으니 얼마나 아플까마는 하반신의 감각을 몰라 통증도 아픔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남편이고 보니 더욱 가슴이 저려왔읍니다.
무릎뼈가 상하기라도 했으면 어떡한단 말인가. 저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그 밤에 남편을 휠체어에 다시 태우고 병원을 찾아 갔읍니다.
늦은 밤이라 굳게 잠긴 병원 문을 몇 군데 두드리며 헤매다가 용케도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은 병원을 발견하고 찾아 들어갔더니 남편의 무릎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진찰을 하던 의사는 『골절이 된 것 같지는 않고 심한 타박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자세한 것은 사진을 찍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내일 나와서 한번 찍어보시지요』하며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온습포와 약을 자주 발라주고 부은 것이 오래갈 터이니 한동안 안정을 하라는 말을 듣고서야 저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읍니다.
그날이후 남편은 무릎에 입은 상처 때문에 휠체어를 타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지겹고 지루한 생활을 해야 했읍니다.
한번 부어오른 무릎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오래도 갔읍니다.
하루에 몇 차례씩 물을 끓여 온습포를 해주고 약을 발라주기를 거의한달、남편의 무릎이 완전해지고 다시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시작한 얼마 후 우리는 또다시 커다란 슬픔에 젖어야만 했읍니다.
그동안 연세가 많으셔서 노쇠하시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건강하시던 시아버님께서 초여름부터 시름시름 앓으시더니 끝내 회복을 못하시고 세상을 버리신 것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