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당신 자신이 불구되어 큰 아들 이면서도 생활이 어렵다보니 모든 것은 마음뿐 돌아가시는 날까지 효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끝내는 동생의 손에서 돌아가시게 하고 항상 자식의 도리를 못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괴로워하던 남편이었는지라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남편의 슬픔은 더 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그해、춥고 슬펐던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가을、저에게는 일생을 통하여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너무나 엄청난 사실이 제 앞에 펼쳐졌읍니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도 경기도 수원시장으로부터「화흥 문화제」효행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니 꼭 참석해 달라는 통지서와 함께 초청장이 우편으로 배달되어 온 것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하고 그 까닭을 몰라 우편물을 손에 쥔 채 넋 나간 사람같이 얼떨떨하고 있는데 남편은 그 연유를 알고나 있는 듯이 히죽히죽 웃고만 있었읍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저를 감쪽같이 속이고 읍사무소에서 나온 직원에게 저의 인적사항과 사진 등을 제시해주어 결국 저는 군에서 도청으로 추천되었고 도에서는 각 군에서 추천되어온 사람들을 심사한 결과 저를 1976년도 화흥 문화제 효행 수상자 충청남도 대표로 선정하였던 것인데 저 혼자서만 그런 사실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 이었읍니다.
그해 10월 21일.
경기도와 수원시가 공동 주최하는 화흥 문화제 행사가 거행되는 수원 공설 운동장에는 그야말로 인산 인해를 이룬 수원시민이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찼고 확성기를 통하여 개회 선언이 수원 원두에 우렁차게 울려퍼지자 축포가 베폭을 찢는 굉음을 내며 천지를 뒤흔드는가 하면 오색풍선이 파란 가을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행사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운데 식순에 따라 화려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읍니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그처럼 큰 행사에 참석하여 가슴에 꽃을 달고 정부에서 내려오신 고위층 인사들과 함께 본부석에 앉아 본 것은 처음 있는 일로서 마치 황홀한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었으나 내가 왜 무슨 자격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가를 의식하게 되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읍니다.
수상자들에게 각 부 장관의 표창과 푸짐한 상품이 수여되고 목에 커다란 화환이 걸려질 때 수만 관중의 뜨거운 열기와는 달리 자꾸만 냉각되어가는 저의 의식은 차마 고개를 쳐 들 수가 없게 만들었읍니다.
더구나 그날 행사의 하일 라이트인 정조 대왕 행차 가장 행열과 수상자 카퍼레이드 때에는 저는 숫제 고개를 가슴 팎에 쳐박고 말았읍니다.
고개를 들어 환호하는 스탠드의 관중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으며 두 눈을 들어 파란하늘을 우러러 볼 수가 없었기 때문 이었읍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고 이처럼 엄청난 위로와 대접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이 세상에는 나보다도 더 큰 인간의 시련과 고통을 오로지 인내와 의지로서 극복하며 고달프고 어렵게 살아가는 장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찌하여 하필이면 보잘 것 없는 내가 이런 상을 받고 이와 같이 엄청난 환대를 받아야 한단 말인지』
차라리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을 만큼 저의 마음은 부끄러움에 슬퍼지기 까지 하였읍니다.
경기도 지방문화제 행사의 일환으로 경기도 도청이 있는 수원시에서 해마다 연례행사로 거행되고 있는「화흥 문화제」는 이조 정조 대왕께서 부왕 사도세자에게 바친 효심을 추모하여 그 지극한 효행을 후세에 길이길이 알리기 위한 것이 행사의 근원을 이루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사도세자 능이 있는 수원실료 효원의 도시라 스스로 일컬으며 해마다 전국 각도에서 효행자 한사람 씩을 뽑아 그 행사의 주빈으로 초대하여 그 노고를 위로해주고 치하해주며 푸짐한 대접을 베풀어주고 있는 것 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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