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을 거듭하던 캄보디아 사태가 종식됐다. 베트남의 지원을 얻은 캄보디아 반군이 2주 만에 폴ㆍ포트 정권은 붕괴되고 말았다. 개전 초기의 큰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너무나도 쉽게、그리고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양민 학살에만 정신을 쏟다보니 정작 國力을 모아야할 외세의 침입에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폴ㆍ포트정권을 몰아낸 반군은 의기도 양양하게 「프놈펜」에 진주했다. 그러나 반군을 환영하는 주민들의 활짝 웃는 얼굴표정을 담은 전송 사진을 접하는 느낌이 그렇게 개운치만은 않는 것은 웬일일까? 이는 불과 45개월 전에 있었던 「프놈펜 최후의날」을 우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시 크메르 정권을 몰아낸 공산군은 무방비의 도시「프놈펜」에 입성했다. 이때 이들은「지상에서의 유토피아 건설」이란 허구적인 공산이론으로 戰禍에 시달려온 국민들을 우롱하고 그들의 환심을 샀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캄보디아 국민들은 당시에도공산군의「프놈펜」입성을 역시 웃음으로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던가? 1백만의 양민을 학살하고 온 국민을 강제노역장에 내보내는가하면 외 도시로 만들지 않았던가? ▲오늘날 폴ㆍ포트정권을 몰아낸 반군들도 다시 평화를 공약하고 나섰다. 그러나 총포가 불을 뿜는 熱戰의 종식이 곧 平和일 수는 없다. 참 평화는 진정한 정의와 사랑이 꽃피는 사회에서나 찾을 수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의 기복권 같은 것은 아예 생각조차 않는 공산치하에서 평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 일과도 같다고나 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가르쳐라』고 호소하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축들도 원래는 사나운 野性을 길들여 지금에 이르렀다. 이 사실은 비록 피에 주리고 폭력만을 일삼는 무리들도 끊임없는 노력과 기도로 순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침묵의 교회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하느님백성들을 위해서도 계속 평화의 길을 가르쳐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