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기에는 의ㆍ식ㆍ주가 가장 기본적일 것이다. 입기 위해서는 많은 미싱 사물과 직접 천을 만드는데 종사하는 이들과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부속물을 만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먹기 위하여서는 곡물을 재배하는 농군들、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한 약재를 만드는 곳에 종사하는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과 방앗간을 비롯하여 낫ㆍ호미ㆍ삽 등의 농기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자는 데는 집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재료와 그것을 다룰 기사들과 그것을 만드는 공장에서 근무하는 높고 낮은 분들이 나의 삶의 직접적인 은인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치가는 국민을 국민은 정치가를、교육자는 학생을、학생은 교육자를、의사는 환자를、환자는 의사를、도한 생산자는 소비자를、소비자는 생산자등 등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회이니 만큼 우리들이 서로서로 다 은인들일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세상에서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절대자이신 하느님만이 스스로 있는 자일 것이다.(출애 3…14 참조)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를 귀한 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만 마땅할 것이다. 때문에 하느님의 표현이요、말씀이신 진리의 그리스도께서 사랑을 가르치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그 많은 말씀 중에서도『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루까 6ㆍ31)와『사람이온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오 16ㆍ26) 가나의 일상생활에 가장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이상 두 말씀은 가파른 현세에 살고 있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한 모든 사람이 심사숙고한다고 손해볼일이 아닐 것이다. 높은 지위와 부귀에 있는 분들이 보다 낮은 자리에 있고 지식이 모자라는 사람들을 얕보고、자기의 은인인줄은 모르고 나로라 하며 어떻게라도 그를 이용하여 자기의 호주머니를 채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세상의 호의호식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넓게는 직접간접으로 도움을 받은 사회에 감사하는 뜻으로 공익을 귀하여 살려고 노력하며 좁게는 가난한 이웃에 눈을 돌리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길이요、진리며 생명(요한 14ㆍ6)이신 그리스도의 정신에 맞는 참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구만섭ㆍ기장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