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들이 기대에 찬 눈빛들로 어린이 프로시간에 TV세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숨들을 죽이고 새가슴 되어 새까만 눈들을 깜박여가며 호기심으로 군침까지 삼키면서 기다리고 있다. 쓱-화면이 비치고 예고된 프로의 음악이 나오면、큰 놈의 선창과 동시에 주제곡 합창에 신이 난다. 노래가 끝나고 화면이 계속되는 동안 주인공과 한 마음 되어 주먹을 불끈 쥐도 하고、그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면 손뼉들을 치며 환성을 지른다. 이런 열렬한 시청 때문에 규칙적인 저녁식사가 흔히 제때를 놓치게 된다. 밥 먹으라는 성화가 연발되면 숫제 밥그릇을 들고들 나가 건성으로 떠 넣으면서 본다. 이런 열렬한 어린 팬들의 기대를 방송국측이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지방 방송국 사정에 따라서」라는 단서 아래이 시간이 간단히 묵살되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의 어린것들 표정은 불만과 불신으로 일그러져 보기가 민망스럽다. 『피이! 방송국 아저씨들 나빠、나빠! 뭐、어른들만 제일인가 피이!』상처 받은 새끼 곰들처럼 저희 방으로 우르르 몰려가서는 탕! 하고 문을 닫아 버린다. 그리고는 어른들이란 공동 집단에 시위나 벌리듯 불러도 잘 대꾸도 안한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이니、어린이는 축소된 어른이 아니니 해서、2세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기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고、해마다 어린이 날이던「어린이 사랑」이란 말이 풍성히 쌓인다. 그런데도 아직 어른들 세계에서 어린이사랑이 정착되려면 요원한 것 같다. 무심코 저질러지는 악의 없는 여러 잘못에서 우리의 어린것들이 상처입고 신음하고 있을 때가 많다.
수년전 어느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한국인이 어린이를 사랑한다는 말은 우리들과 그 뉘앙스가 다른 것 같읍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에서 어린이 사랑이란 용어는 어린이 존경이란 말로 바뀌어져야할 것 같읍니다』날카로운 관찰일 것이다.
사실 우리네 의식 구조 안에서 어린이 사랑이란 말은 그 내용면에서 잘 용해되어 있질 않다. 종적 질서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어린이 사랑」이란 하향성(下向性)으로 파악되어진다. 다시 말하면 인격적 독립체로서의 배려가 무시된、소유적이며 종속적인 대상으로서의 사랑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꾸러미나 마음 내킬 때 푸는 선심 따위로 쉽게 차지할 수 있는 것으로 믿어버리는 경향이심하다.
종종 신문지상에서 보는 자녀동반자살、어린이유괴、어린이 살해 등은 그런 유형(類型)들의 단적인 예일 것이다.
어린이는 하느님의 은총이 부모와 세상에 의탁한 독립된 인격자인 것이다.(사목헌장 제2부 참조). 그래서 주님은『누구든지 이런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루까 9장 48절)『나를 믿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 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저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마태오 18장 6절)라고 경고하며 일러주시고 계신다.
이런 것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나 우리 피 속에 진하게 용해되어 있지 못하여 무심결에 잘못 저질러지는 우리네 약점인 것이다.
진정「어린이 존경」이란 우스꽝스러운 말로 둔감하지 않을 참 뜻의「어린이 사랑」을 할 수 있게、빨리 되어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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