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이것 좀 염치없는 생각인지 몰라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한 거야. 즉 말하자면 당신이 그토록 고생을 하면서 사는데도 내 자신은 당신한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으니 사회가 당신의 노고에 보답을 좀 해주고 위로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 그래서 그러는 것이지、나 역시 상 타는데 욕심내서 그렇게 한 것은 절대 아냐』
『당신도참 딱도 하시군요、내가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데 왜 남한테 그런 걸 기대해요. 이제는 제발 부탁이니 그런 짓 하지마세요. 이 세상에서 백번 천번 상을 받는다 해도 나중에 하느님한테 아무런 상을 못 받는다면 그 모두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우리 이대로 조용히 살면서 착하게 살기로 해요』
상을 받는 일은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제가 분수에도 맞지 않는 상을 받고 칭찬을 받으며 남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저의 개성에도 맞지 않는 일이 었읍니다.
그런데 아! 그런데…
이무슨 기구하고 슬픈 운명이란 말인지….
그해겨울 시아버님의 일 년 상을 막 지낸 바로 그 이튿날 그동안 연탄 까스 중독으로 의식을 잃고 자리에 누워 계시던 친정어머니께서 세상을 뜨신 것이었읍니다.
가을일을 다 끝내 놓고 강원도 막내딸네 집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서울로 이사가 살고 있는 둘째 오빠 댁에 머물고 계시다가 그런 변을 당하신 것입니다.
워낙 심하게 연탄 까스에 중독이 되신 어머니를 어떻게든 회복시켜 보려고 서울 ⅹⅹ대학 부속병원에 입원시켜 거의 한 달 동안이나 갖은 정성을 기울여 보았으나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너무도 가망이 없어 집으로 퇴원해온 불과 며칠 후、그토록 애틋하고 간절했던 자식들의 소망과 노력도 외면을 한 채 서울 사는 언니가 본당 레지오 단원들의 협조를 얻어「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고 기어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읍니다.
온가족이 영세 입교를 하였고 신앙이 두터워 레지오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서울 언니는 할일을 다한 것이었으며 어머니가 대세를 받고 숨을 거두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읍니다.
시아버님 제사파잿날 어머니가 그 밤을 못 넘기겠다는 연락을 받은 저는 허겁지겁 달려가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볼 수는 있었으나 음식물을 주입시키느라 목에 구멍을 뻥하게 뚫어놓은 그대로 자식들에게 한마디 유언의 말씀도 없이 숨을 거두신 어머니의 비참한 모습을 저는 차마 내려다 볼 수가 없었읍니다.
어느 자식보다 어머니의 가슴에 한 맺힌 못을 박아드리고 눈을 감으실 때까지 속을 썩혀드렸던 저였기에 더욱 그러했고 그렇기 때문에 저의 슬픔은 더욱더 복받쳐와 말없이 누워계시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한없는 눈물을 흘려야 했읍니다.
그러나 이제 한번 눈을 감으신 어머님은 목을 놓아 울어본들 아무소용이 없었으며 목이 터져라고 어머니를 불러보아도 어머니의 음성은 아무데서도 들을 수가 없었읍니다.
저는 문을 박차듯 뛰쳐나와 뜨락에 털썩 주저앉아 캄캄한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았읍니다. 제가 어렸을 적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보며 소녀의 아름다운 꿈의 나래를 펴며 한없이 부푼 희망을 키워보던 정답던 그 별들 이었건만 그날따라 그 별 들도 저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깜박이면서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 보였읍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고 잘한 일 보다는 못해드린 일만 가슴에 한이 맺히도록 마음이 찌는 것인가 봅니다.
제가 처음 남편과 결혼을 하려고 할 때 딸의 장래를 걱정하시던 나머지 포대기 끈으로 당신의 목을 조르시면서『차라리 내가죽어야지、평생 저 꼴을 보느니 내가 죽어야지…』하시며 몸부림을 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어 주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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