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을 당하시기 얼마 전 저희 집에도 다녀가신 어머니는、이처럼 돌아가실 줄을 미리 알기라도 하셨는지 가실 때는 발이 안 떨어져 자꾸만 저희 집을 뒤돌아보시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시더라는 앞집 미경이 엄마의 말이 저의 뇌리를 밤송이처럼 찔러대는 것 이었읍니다.
처음에 그토록 반대를 하시던 어머니였지만 막상 결혼식 날은 큰 오빠를 데리고 찾아와 축복해 주셨고 그 뒤로 자나 깨나 저를 못 잊어 눈물까지 흘리셨다는 어머니. 제가 보고 싶으면 오셨다가 가실 때는 언제나 눈물을 글썽이며 가시곤 하던 생전의 어머니의 뒷모습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 방울방울 여울져와 슬픔은 더욱 복받쳐 왔읍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행여 손자 녀석이라도 하나 얻어 볼까 하는 가엾은 염원으로
『너는 저 침대로 올라가 자거라. 부부간은 같이 자야지、너희들은 싸운 사람들 같이 항상 떨어져서 하나는 침대에서 자고 하나는 방바닥에서 자고…그게 뭐냐』하시며 핀잔을 주시던 어머니는 당신의 슬픈 소원도 결실을 보지 못하시고 끝내 세상을 뜨시고 말았으며、제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매우 기뻐하시더라는 어머니는 딸의 상패도 상품도 만져 보시지도 못하시고 그만 눈을 감으셨던 것입니다.
이제는 영영 다시 못 올 길을 가신 어머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부르고 싶어도 불러 볼 수 없는 가엾은 친정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사위들 중에 단하나 참석을 못한 남편을 붙들고 목을 놓아 어린애 마냥 엉엉 울고 싶었으나、그동안 장례식에 참석도 못하고 혼자서 애만 태워 초췌해진 남편의 얼굴을 대하고보니 오히려 남편을 위로해 줄 입장이 되어 터져 나오는 슬픔을 꾹꾹 눌러 참으며 남편 앞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태연해야만 했읍니다.
그러나 남편은 행여 어머니가 돌아가신데 대하여 제가 얼마나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까 해서 어떻게 하면 저의 슬픈 마음을 달래주고 어떤 방법으로 해야만 저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하여 몹시 안타까와 하는 모습을 남편의 얼굴에서 역력히 읽을 수가 있었읍니다.
『율리아、나는 당신한테 무슨 말로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줄 것인가를 도무지 모르겠어.』
『여보 저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저 담담할 뿐 이예요. 모든 것이 어머니의 운명이고 하느님의 뜻이 아니겠어요. 이렇게 와서 당신 얼굴을 보니 제 마음에 다시 생기가 돋는 걸요』
『그렇지만 나는 여러 사람한테 너무 많이 죄를 짓는 것 같아. 당신한테도 그렇고 또 나로 인해서 당신으로 하여금 돌아가시는 날까지 어머니 마음을 한시도 편하게 해 드리지를 못했으니…당신 나하고 결혼한 것 이런 때는 더욱 후회스럽지?』
『당신 또 쓸데없는 소리하시네요. 이제 제발 그런 소리 듣기 싫으니 그만 좀 해두세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무슨 일에나 지나고 나서는 절대 후회 안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거구요』
저는 비교적 체념이 빠른 여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그 일이 아무리 잘못 되어도 그것을 가지고 속을 썩히고 애를 태우며 애탄개탄 해보지는 않았읍니다.
한번 드러난 결과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보면 차라리 그 결과에 승복하며 그것을 거울삼아 자기의 사고나 행동을 반성하여 앞으로의 생활에 참고로 삼는다면 그것이 훨씬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한 번 가신 어머님、생각하면 할수록 목이 메이고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으나 저에게 주어진 생활의모든 여건들은 저를 마냘 슬퍼하게만 놓아 주지를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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