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못생긴 대리석의 돌이 있었읍니다. 그 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생긴 탓에 그 누구도 주워가지 않은 채로 땅바닥에 나딩굴어져 있었읍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그곳을 지나치게 되었읍니다. 미켈란젤로와 그의 친구였읍니다. 그들은 마침 조각품을 만들 돌이 필요했기 때문에 적당한 대리석의 돌을 찾고 있는 중이었읍니다. 미켈란젤로의 눈에 못생긴 돌이 띄었읍니다. 그러나 친구는 그의 옷 소매를 잡아끌며『그건 너무 못생겼는데… 아무것도 조각할 수가 없겠어』하고 말했읍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그 돌을 집어 들려고 하다가 그만 팽개쳐 버리고 말았읍니다. 그들은 보다 멋진 돌을 찾아 그 자리를 떠났읍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미켈란젤로에게 무슨 소리인가가 뒤에서 자꾸 들려오지 않겠읍니까! 꼭 자기를 부르는 듯한 소리였읍니다.
그는 돌아서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읍니다. 놀라운 일 이었읍니다. 그 소리는 바로 그 못생긴 돌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읍니다. 돌이 그를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떤 커다란 힘에 이끌리듯 못생긴 돌을 집어들었읍니다.
『그 따위에 뭘 조각하려고 그래?』친구는 그러는 미켈란젤로를 보고 웃으며 놀려댔지만 그는 결코 웃지 않았읍니다.
『이 돌이 날 부르고 있어. 이상한 일이야、참 이상한 일이야』그는 다만 그렇게만 말하며 돌을 소중히 집으로 가져왔읍니다.
그날부터 미켈란젤로는 매일 돌을 들여다 보았읍니다. 며칠을 그랬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하나의 형상이 돌에 파여지기 시작 했읍니다. 모세의 모습 이었읍니다. 그 못생긴 돌은 미켈란젤로의 손에 의해서 모세의 모습을 이 세상에 영원히 구현하게 된 것입니다.
새해가 밝았읍니다.
약간 두렵기도 하고 무언가 희망에 가슴 설레게 하기도하는、또 한 해의 첫날이 시작 되었읍니다.
종소리가 울립니다. 하나、둘、셋…종소리는 또 다음 종소리를 이끌고 천천히 누리에 울려 퍼집니다.
종소리를 하나、둘 세고 있으려니 갑자기 슬픈 생각이 목구멍을 치밀어 오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불편한 모든 것에 대한 생각、그 위에 또 한해가 덮어 씌워 진다는 생각 따위.
어릴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했지만 이제는 꼭 그렇게 즐겁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시간의 의미와 나라는 존재의 무위(無爲)와 하찮음을 알아가고 있다는 증좌일는지.
그럴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사물에는、또는 존재에는 그 무엇에게나 미켈란젤로의 돌처럼 숨어있는 현상 또는 뜻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일、그것은 결코 우리의 시간을 무위로 끝내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음 새해가 온다하여 약간이라도 두렵거나 곤혹스런 마음을 갖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못생긴 돌 하나 속에서 미켈란젤로는 성자의 모습을 보아냈고 곧 그것을 조각해 냈읍니다. 조각은 돌과성자의 모습사이에서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이었읍니다. 물론 그는 그 돌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읍니다. 그랬다면 저 유명한 모세상은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열렬하고 날카로운 마음은 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였고、돌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풀잎 하나에도 뭔가 자기가 되고자하는 현상이 있읍니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날리는 종이조각 하나에도 이곳의 무수히 많은 날벌레 또는 먼지 하나에도 보이지 않는、그라나 보려고 애쓰는 이에게 결국 보이는 모습이 있읍니다. 성취의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누구에 의해서인지 당장 할 도리는 없지만. 「나」는 사실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지만、그래도 이루어야 할 그 무엇이 있기에 혹은 그 이루어야 할 것을 위해서 기필코 해야 할 그 무엇이 있기에 이 시간、이 시대에 어렵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정말 돌의 소리를 들어내야 겠읍니다.
바람소리 하나도 흘려듣지 말고 그 속에 있는 것의 들리지 않는 외침을 들어내야 겠읍니다.
길을 걸을 때는 잘 다져진 발밑의 흙 하나도 겸손히 겸손히 밟아야 겠읍니다.
우리 동네 길에 많이 서 있는 버드나무、그 가지 밑을 나는 고개 숙여、이리저리 버들잎이 얼굴을 귀찮게 건드리는 것을 피하며 걸었읍니다.
그러면서 간혹 버드나무가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나는 투덜거렸읍니다. 그러나 이제는 결코 투덜거리지 않겠읍니다. 그 보다 잎 하나하나의 속을 열심히 보아야겠읍니다.
뭔가 분명 들어있을 것입니다.
무수한 얼굴들、내가 그냥 지나쳐 버리곤 하는、가난에 찌들고 슬픔으로 짓 이겨진 이 땅의 무수한 얼굴들-새해엔 그러나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진 채 그냥 나타났다간 사라지곤 하게 해서는 안 되겠읍니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힘-그것은 노래입니다. 내가 혹시 화가라면 아마도 그것을 그려 줄 수 있겠지만…
새해가 밝았읍니다. 모든 것을 열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또 한해의 시간이 시작 되었읍니다.
또 한 해의 여유가. 언제나 힘찬 마음이 같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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