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종! 주인의 부르심에 무려 40년 만에 응답하고 주인이 뿌린 씨앗을 38년만에야 싹을 틔운 메마른 땅! 이 땅과 이종을 버리지 않으시고 責하지 않으시며 은총을 주시는 그 주인은 과연 누구시오니까?
나는 충청도 어느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읍니다.
두 살 위인 형이 학교에 입학하면서 읍내까지 혼자가기 심심하다고 나를 성당유치원에 보내 주셨읍니다. 이때 유치원은 돈 내고 다니는 게 아니었읍니다. 다니겠다고 가서 이름만 적으면 되고 빠지지 않고 잘나가면 칭찬해주고 선물도 주셨읍니다. 언제까지 다녔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잊혀지지 않는 일들은 많읍니다.
게다(나무신)을 신고 걸어서 성당까지 가면 언제나 발통이 부르터지고 다정하신 수녀님이 약을 발라주시며 무슨 말이었는지 따듯하게 해주던 일! 성당마당 벚나무에 올라가 버찌 따먹다 떨어져 기절한 덕택에 수녀님 하얀 침대에 누웠던 일! 「벗나무 올라가지 않기」손가락 걸고 약속하던 일 이때 천주님의 자비의 씨앗이 내마음속에 심어졌읍니다. 그 후 전란과 해방 또 전란 이 속에서 모든 것을 잊은채 성장했고 결혼하여 딸들을 얻었읍니다. 우리 네 식구는 똘똘 뭉쳐 서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복하게 살았읍니다. 누구의 권유였는지 나는 개신교를 여러곳 다녔읍니다. 하지만 제 영혼의 고민을 풀기는커녕 열심히하면 할수록 의문만 더 쌓였고 내 영혼을 더 방황케 했읍니다. 십여년 전 원효로에 살 때 어느 주일날 성당에 한번 가 보았읍니다. 원효로 전차 종점에서 산꼭대기 성당까지는 꽤 먼길이 었읍니다. 큰딸<데레사>은 내가 업고 작은 딸은 제 처가 업고 무더운 여름철이라 힘겨웠지만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읍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멀었던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읍니다. 어릴적 그 아름다운 추억? 무척 인자하던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의、몸집이 유난히 크시던 외국 신부님、어머니보다 더 다정하시던 수녀님、도토리 만큼씩한 까만 복주를 옆구리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시던 수도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읍니다. 나는 미사 전례를 모르기 때문에 성당 안에서 앉았다 섰다하는 한 시간이 무척 민망스러웠읍니다. 제처도「촌닭」노릇하기가 쑥스러워 가자고 옆구리를 꾹꾹 찌르는 것을 미사가 끝나면 누가 안내해 주겠지 하고 참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막상 미사가 끝나도 물어볼만한 여유를 주는 분도 안계시고 어디서 온「촌닭」들이냐고 물어주는 사람도 없었읍니다. 나는 돌아오는 무거운 발걸음 속에서 내 자신이「장님」인줄모르고 아름다운 추억과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생각했읍니다.
그때부터 나는 내 멋대로 살고 내 멋대로 생각했읍니다. 나의「돈이나 잘 벌면 되지」하는 생각에는 세상일이 내 뜻대로 안되는 불만과 이기심 경쟁심에 잘되고 승리해도 독선과 자기도취、교만이 쌓여 늘 자신이 죄스럽기만 했읍니다. 따라서 집안의 평화는 말이 아니었읍니다. 겉으로 보기는 평화스러운 듯 보이지만 무슨 일이 조금만 생기면 아주 마귀의 소굴로 돌변하곤 했읍니다.
오경응 박사의「동서의 피안」이란 책에서 자신의 귀정경위를『눈이 멀어있는데 우연히 어느 문턱에 발이 채어「광명의 궁전」안으로 배를 깔고 나자빠져 들어갔다』고 한 귀절을 보았읍니다. 이 귀절은 바로 나의 입교경위 그대로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집으로 이사와서 알게 된 고마우시고 장하신 유 마리아 할머니(전농동본당)-홀로 네형제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도 잃지 않으시고 천주님의 자녀로 기르시고 成家 시키시고 성모님의 사랑과 겸손으로 언제나 조용한 가운데서 성모님의 정신을 실천하시는 할머니-
내가 성당에 나가겠다고 하니까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할머니! 나는 이 장하신 할머니의 성스러운 문턱에 발이채여 넘어진 곳이「광명의 궁전」면목동본당이었읍니다. 나는 예비자교리를 열심히 가족과 함께 배워 마음의 눈이 뜨이기 시작할 때 오랜세월 마음속에만 계시던 그 신부님도 어머님보다도 다정하시고 인자하시던 수녀님도 제 앞에 계심을 알았읍니다. 우리 가족은 요한 마리아 데레사 레지나로 새 생명을 받고 부활절에 태어났읍니다. 매월 첫 첨례에 지향을 두고 삶의 즐거움! 미사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새 생명의 약동 속에서 성모님의 겸손과 순명을 실천하려는 우리가족의 마음속에 지금은 기쁨과 행복만이 넘치고 있읍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족에 하신 이 장한일과 그 은총에 나는 일생 빚진 자로 몸둘 바 모르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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