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이 며칠 출타 중이신 어느 날、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드니 시외전화로 신부님 계시냐고 묻는다. 계시지 않는데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하고 물으니『나 윤 신부인데…이번에 내 친척이 그 본당으로 이사하게 되었소. 수일 내에 찾아 갈 것이니 좀 잘 봐주소』한다. 좀 설익은 신부인가 보다 하면서도、성직자 친척이 이사 온다는 사실이 꽤나 반가워 잘 알았노라 공손히 대답하고 수화기를 놓았다.
다음날 낯선 사람이 찾아와 윤 시몬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바로 그 사람이구나 생각하고、이미 전화 받아 알고 있노라고 말하고 친절을 다해 맞이했다.
이것 저것 묻고 대답하는 중에 시간이 흐르자、그만 가보겠노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따라 일어나 자주 뵙자며 문을 열어주었다. 문밖으로 몇 발 나아간 그가 되돌아서서 가까이 오더니 무엇인가 말 할듯 할듯 한다. 눈치 채고 무슨 말씀이냐고 묻자『초면에 대단히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내 자가용 차가 고장이나 지금 멀지 않은 수리공장에서 수리중인데 수중에 있는 돈이 부족됩니다. 죄송한 부탁입니다만 며칠 뒤에 꼭 갚아드리겠으니 돈 만 원만 좀 빌려 주십시요. 미안 합니다.』한다. 마침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어 이웃에서 빌려다 주자 고맙다고 치하하며 떠났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가 두 번 지나서야 속은 줄 알았고、열 두 번 지나자 잊어 버렸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事象의 물결 속에서 시간을 줄여가며 산다. 그러는 동안 원하던 말던「믿고」산다. 아무리 非信者라도 심장의 고동을、죽음의 명백함을、사랑의 불멸을、직선의 무한을、그리고 인간의 미소를 믿고 산다. 자기 존재를 부인할 수 없으므로-.
하지만 참(眞)을 믿는가? 심장의 고동을 믿으면서도 삶의 本意를 불신하며、죽음이 너무도 명백하므로 죽음을 불신한다. 사랑의 불멸을 노래하면서도 살육을 남의 손에 맡기며、직선의 무한을 싸늘한 머리로 定義하면서도 직선위에서 살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의 미소를 겨우 터득할 듯 말듯 하다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 참을 믿지 못한 채로-.
어쩌다 되돌아보니、무수한 虛像을 實像으로 착각하며 살아왔다.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虛像에 속을 것인지 모른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어쨌든 우리는「믿고」산다. 그러나 참보다는 虛를 믿는 쪽이 훨씬 많다. 권위에의 맹종、금력에의 과신、관능에의 장님 명예에의 몽유병자!
사도 바오로께 참을 믿느냐고 물어 본다.『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읍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내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읍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의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필립보 3장 8절~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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