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평생을 살려면 누구나 한 번도 병에 들지 않고 살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병이 나면 고쳐야 하는데 누가 소화불량 환자를 배꼽에 고약을 붙이고 붕대를 감아 고친 예는 없다. 그렇다면 오늘의 불신 병도 외적으로 나 물질로는 불가할 것이다. 즉 믿는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므로 유형한 것으로만은 불가하다. 예컨대 산소가 필요한 병자에게 쌀밥으로 대치 할 수 없는 것처럼 불신에는 진실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한데 현실을 보면 속이불편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니까 칼 들고 수술을 한다고 하듯이 불신 병을 고치기 위해 총 칼들고 믿고 살 수 있는 평화를 준다고 하기에 불안에 싸여있다. 바로 6ㆍ25가 그 본보기이며 그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그래서 애가 침이 무서워 아픈 것을 참고 말을 하지 않기에 치료가 지난하듯 칼 들고 평화를 준다니 전율이 앞선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은『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시고 의사가 활명수를 주듯이 진리의 생명수를 주어 평화를 주셨다. 사람이 먹는 것은 위가 있어서 라면 믿는 것은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음식을 잘못 먹거나 과식을 하면 소화불량으로 먹을 수가 없듯이 일조에 문전 옥답을 차지하고 억대를 삼킨 양심이 온전할 수가 없기에 불신 병이 생기는 것이다. 한데 체한 것은 토하고 소화불량은 죽으로 절식을 해야 하듯이 후자도 그래야 할 터인데 남의 것까지 더 채우려 하고 있으니 그 불신이 치유될 것인가? 부모가 자녀에게 밥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양심을 고치는데도 검소한 생활로 전환 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위병환자가 병을 고치는 것보다는 떡 고기를 탐식하려하듯 이 마음을 고치는 것은 소홀히 하고 호의호식에 혈안이 된다면 불신은 가속화 될 것이 아니겠는가?
자연법칙은 엄연해서 변질된 음식이나 과식을 하고 몸이 편할 수 없다면 가짜 부정 탐욕으로 마음이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위가 양이차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이 양심도 그와 같아서 필요이상의 것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몸이 건전하려면 양에 맞도록 먹듯이 양심에 맞게 살 때 마음이 편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생리이다 한편 위가 공기로 살지 못한 다면 양심의 음식으로 살 수 없다. 예수님이『빵만으로 살지 못하고 말씀으로 산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몸은 흙에서 와서 땅의 곡식을 먹어야 살고 마음은 하늘에서 왔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믿어야 살게 되기 때문이다 여하간 음식을 앞에 놓고도 먹을 수 없을 때 위병이 있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진리를 믿을 수 없는 것도 양심이 온전치 않다는 증거이다. 요는 먹지 않고 몸이 기동을 못하는데 믿지 못하고 마음이 편할 것인가? 여인이 부끄러워도 가슴을 보여야 진맥을 해서 병을 고치듯 우리의 마음도 그래야 주님이 보시고 고치게 될 것이다. (철암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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