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이란 해는 우리한국 교회에서 가장 경축할 만한 해가된다. 한국 땅에 하느님의 복음이 전래된 이래 가장 많은 司祭지망생들이 神學校에 몰렸다. 本報 2月4日자 面에는 그에 대한 상세한 보도와 더불어 의욕적인 한국 교회상을 엿볼 수 있는 기사가 실렸다. 兩大神學校 平均 지망생의 증가율은 43%라는 놀라운 數가 나왔고 特히 광주 대신학교는 정원의 3배가 넘는 많은 지망생들이 나타났다. 학교 당국자들의 말에 의하면 매년 지망생수도 늘어갈 뿐더러 질적으로도 많은 向上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일례를 들면 서울대에 응시할만한 지망생 수만도 상당수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앞에 두고 생각해 볼 때 두 서너 가지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첫째는 각 교구에서 성소계몽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서울ㆍ대구 대교구의 경우 교구 사목국을 주축으로 담당 신부가 성소계몽을 위해 연중무휴로 띄고 있다. 타교구도 이런 일련의 노력을 한다고 봤을 때 성소에 대한 인식이 차차 본 궤도에 오르게 된 이면에는 이처럼 숨어서 노력하는 각 교구 성소담당 신부들의 힘이 컸다고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일종의 심리적인 反作用이라 할 수 있겠다. 사회의 온갖 不條理를 목격한 젊은이들은 어떤 생활이 보람된 人間生活 인가를 스스로 自覺하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다. 그리고 보면 司祭生活의 참뜻을 이해하는 信者數가 날로 증가한다는 뜻이 되고 참信仰의 가치를 인식하는 數가날로 증가한다는 뜻이 된다. 셋째로 들 수 있는 것은 기성 젊은 사제들의 생활이나 신학생들의 생활이 전체신자들에게 영향을 준 저이다. 본인들이 사제성소에 대한 참뜻을 알고 正道를 걷고 있고 神學校를 직접 운영하는 교수 神父들이 보여주는 참 司祭에의 길을 올바로 인식했을 때 信者들은 마음에서 부터의 호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두 서너 가지 이유의 결과가 합해져서 司祭聖召가 증가한다고 보아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든 금년은 우리한국 교회로 봐서 경축할만한 해다.
이런 현황에서 새 사제들에게 바라고 싶고 새 사제들이 어떻게 살아주었으면 하는 신자들의 소망을 말해 보고자한다.
첫째、신자들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神父들을 존경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본당 신부는 존경받는 신부였으면 하는 당연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간섭도하고 말도 많이 한다. 같은 이유에서 무조건 좋아한다. 그래서 좀 잘못해도 잘한다고 칭찬한다. 무조건 존경하고 싶고 믿고 싶은 마음에 司祭로서의 正道에서 벗어나도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너그럽게 봐준다. 그러다보면 사제들은 내가 과연 偉大한 人物이구나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이렇게 되면 그 사제는 신자들한테서 信望을 잃게 되고 냉담자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항상 神學校를갓나온 그 심정의 성스럽고 가난한 마음으로 겸손되이 살아달라는 것이다.
둘째、人間의行動은 精神의 표현이다. 人間의 言語도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바를 밖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사제들은 특히 말이 거칠다고들 한다. 예의가 없다고도 한다. 신자들이 신부를 평할 때 그 신부의 外的態度를 보고 평하지 마음이 어떤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그 신부의 말과 행위를 보고 그 신부의 인품을 평하게 된다. 때로 오해가 없으란 법도 없다. 그러나 항상 오해일수도 없는 일이다. 요는 사제는 참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항상 가져달라는 것이다. 신자들은 사제들의 생활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또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짜증스럴 때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그것을 빙자해서 잘못된 행동이나 말을 항상 이해해 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다.
셋째、인간이 가장 완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완전무결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인간답기 위해서는 가장 인간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을 곁들인、그리고 실수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의 부족함을 인식하면서 성실히 사는 것이다. 완전한 인간은 없다. 완전으로 지향하고 사는 것이 사람이다.
그것을 알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고 겸손된 사람이 되어야만 된다. 그래서 神父들이 흔히 使用하는 말이<나도 사람이다>란 것이다. 그래서 나도 人間的인 약점이 있으니 잘못된 것은 다<사람>에게 돌려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人間的인 次元에서 神父를 헤아려 달라는 것이다 그런 나머지 하느님의 대리자란 고상한인상이 흐려진 때 信者들은 허전함을 느낀다. 그래서 인간적인面을 강조하며 바라보는 쪽은 신자라야 하고 司祭들 자신들은 <나도 사람이다>란 말로 너무 스스로를 정당화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새 신부들에게 부탁이 너무 많을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신자들은 司祭들에게 아뢰고 싶은 것이 많다. 그 많다는 것이 얼마나 司祭들을 아끼고 싶은 심정 이겠는가 헤아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앞날에 무한한 영광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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