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에 있어서 법을 떠나서 되는 것은 없다. 즉 풀 한포기가 살려던 자연법에 의하여 뿌리는 땅에 내리고 순은햇빛을 봐야하며 국민은 국법을 지켜야 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마음이 되려면 양심 법을 따라야 가능하게 된다. 아무리 국법이 금과옥조라 해도 그 법으로 나무가 사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이 만든 법으로 하늘이 준 양심 법을 제어할 수 있겠는가? 한마음이 되려면 믿어야하며 믿음은 진리를 수반함으로 불신과 허위로는 불가하다. 몸이 껍질을 먹고 살 수 없듯이 마음은 허위를 믿고 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생리이다. 한데 한겨례가 총구를 맞대고 이웃과 담이 높아간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증표이니 한마음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또한 교만으로는 불가하다 왜냐하면 교만은 항상 네 탓이라고 하기에 분열과 분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남한 때문에 통일이 안된다하고 우리는 그들의 탓으로 불행하다 하며 없는 자는 있는 자가 착취를 해서 못살고 있는 자는 없는 자가 도둑질을 해서 불안하여 내 잘못과 내 탓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이유가 법(法)의 어원을 보면 명백해진다.
즉 물이 흘러가는 대로 되는 것이 법(水去)이므로 이미 대동강ㆍ한강은 밑으로 흘러서 바다로 하나가 되는 것이니 우리의 마음이 겸손의 자세로 내려가면 자연히 한 마음이 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겸손하면 내 탓이라고 하기에 화해가 가능해지게 마련이다. 쉽게 말해서 어른이 누워있는 아기와 하나가 되려면 허리를 굽혀 안아서 올리지 않는 한 불가한 것처럼 돈ㆍ지식ㆍ힘이 있다고 고자세로 교만하고서 서민과 한 마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의 신분을 가지시고 말 구유에 비천한 인간으로 탄생하여 겸손의 팔로 안아서 하늘에 같이 오르게 하셨기에 국적과 피부색이 다른 민족까지도 하나가 되게 하시지 않았는가? 만일 겸손한 마음으로 내 탓이라고 가슴을 치지 않고 모두가 네 탓이라고 상대방에 손짓을 했다면 결코 7억의 주의백성이 한 우리 안에서 서로 믿고 살 수 있었을 것인지 의문이다. 그것은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강이 개천으로 갈라지듯 교만으로 올라갈수록 분열되기 때문이다 교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밑에 있는 자가 위에 있는 자보다 낫다는 것이니 오늘의 인간이 하느님보다 낫다는 그것이 바로 교만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주님의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그날이 올 것이라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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