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開催된 主敎常任委員會는 한국 시노두스 즉 한국 天主敎 公議會 開催문제를 春季主敎總會議題의 하나로 上程키로 하였다고 한다.
公議會라는 用語는 Synodus 또는 Concilium이라고 하고 있고、그 가운데는 世界公議會 地域公議會 國家公議會 管區公議會 敎區公議會등이 있다. 한국天主敎 公議會같으면 國家單位의 公議會가되는 셈이다. 歷史的으로 볼때 韓國天主敎公議會는 1931년 朝鮮敎區 設定 百周年紀念事業으로 平壤에서 단 한번 개최되었을 뿐이다.
公議會의 目的은 그것이 世界的이든지 적게는 敎區次元의것이든지 單位敎會가 當面한 總體的 刷新작업을 하는데 있는 것이다. 第2次「바티깐」公議會(1962~1965)가개최되었던 것도 第1次「바티깐」公議會(1869~1870)가 여린지거의 百年후 現代化의 刷新作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쇄신작업은 언제나 敎義와 敎會規律에 限定된 刷新이다.
이제 天主敎 韓國公議會는 第二次「바티깐」公議會가 確定한內容을 올바로 適應하기 위해서나 48년前에 韓國公議會가 決定한 韓國天主敎會의制度와 規律의 刷新을 위해서나 하루속히 韓國天主敎 公議會는 開催되어야 마땅하다. 第二次「바티깐」公議會가 지난지도 14년이나 되었건만 韓國天主敎會의 總體的刷新作業을 위해서 公議會를 開催하지 않았다는 것은 韓國主敎團의 怠慢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일찍이 西歐 가톨릭에 있어서는 和蘭 西獨 스위스等 여러 나라에서 各各國公議會를 열어 敎會의 새로운 體制整備를 하여왔다.
이제 韓國天主敎 公議會의 必要性이 얼마나 時急한가를 몇 가지 事實에 立脚하여 지적해보기로 하자. 지난 14년 동안 韓國에서도 敎區나름대로 敎會刷新의 口號는 수없이 내걸어 왔지만 果然 韓國天主敎會가 統一的으로 이룩하여 놓은 刷新 結果는 무엇인가? 敎理와 司牧에 있어서는 各樣各色의 방법이 統出되어 混迷만을 增大시켜왔고 聖職者들의 生活이나 敎會制度에는 뚜렷한 교육하나 없이 適當主義에 맡겨진 채 계속되어 오고 있다. 主敎들은 司祭들의 정신을 개탄하고 司祭들은 無力한 指導者들을 원망만 하고 있고 信者들은 混迷속에 누구의 말이 옳은지 분간할 수 없는 狀況에 있는 것이 오늘의 實情이다. 『信者는 성직자를 원망하고、성직자는 주교를 원망하고 주교는 땅을 치고 있다』라고 말이 나오게 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現狀에 대한 책임은 一次的으로 主敎들이 져야한다는 것은 初步的常議에 속한다. 世界公議會가 敎會進路를 明示한지 14년、立法ㆍ司法ㆍ行政의 三大權을 한 몸에 지니고 있고 그것도 神的制度로서 保障받고있는 主敎들이 오늘의 韓國天主敎會의 混迷를 방관만하고 수습을 못한다면 누가 이 問題를 解決해야한단 말인가?
1974년以後 韓國天主敎 主敎團은 時局問題로 總會때마다 이를 擧論하였고 수 많은 聲明書와 時局 기도회를 開催해온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情熱과 行動을 韓國天主敎會의 刷新作業에도 기울였다면 韓國天主敎 主敎團은 오늘과 같은 對立相을 露出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韓國主敎團은 이 問題로 分裂의 持續을 止揚하고 그 눈을 敎會안으로 돌려 오늘 이 땅의 하느님 百姓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으며、主敎들을 보필하는 1천2백 명의 聖職者와 4천 명의 修道者들이 갈망하는바가 무엇인지를 看破하는 지혜를 가져주기 바란다.
이 땅의 하느님 백성들은 韓國主敎團이 時局問題로 分裂되거나 對立되는 것을 願치않는다. 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德治論理의 모범을 누구보다도 天主敎會가 그 示範을 주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그것을 期待할 수 있단 말인가?
兄弟的 사랑의 一致를 유언으로 남기신 主님의 애원을 充足시켜 주어야 할 분들은 누구인가? 第二次「바티깐」公議會가 主敎共同性의 主義를 새롭게 確定한 그精神을 行動으로 보여주어야 할 분들은 바로 主敎들이 아닌가? 그리고 天主敎會의 生命은 敎會의 으뜸이신 敎皇의 敎導權에 대한順從과 忠實에 있다면 果然 韓國天主敎會의 風土가 敎會最高主導權에 忠實한가도 檢討해보고 넘어가야할 果題라고 본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최근「푸에블라」에서 하신 연설에서 敎區權에대한 도전을 지적한 것은 韓國天主敎會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바오로 6세 교황과 요한 바오로 2세께서『福宣音敎란 個人的이고 孤立的인 行爲가 아니며、個人的인 基準이나 判斷에 의한 自由裁量權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敎會와 司牧者들이 一致해서 行해야한다』(푸에블라 강연)고 强調하신것은 더한층 反省해보아야할 果題라고 본다.
하느님 百姓들로서 理解할수 없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사랑과 一致의 가톨릭 敎會가 왜 分裂과 對立갈등으로 치닫고 있는가? 人權을 부르짖으면서 敎會內의 人權문제 그리고 一年에 百萬名이넘는 母胎의生命이죽어가는데 왜 그러한 人權을 위해서는 한번의 기도회도 하지 않고 있는가?
하루속히 주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함께 참여하는 韓國天主敎 公議會가 開催되어 오늘 우리敎會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解決하도록하는것이 그 어느 事業보다 우선가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그 時急性을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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