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울지 않으렵니다. 설령 뼈를 깎고 살을 에는 그 어떤 아픔이 또다시 덮친다 해도 결코 실망하지 않으렵니다. 제게는 전능하신 분의 힘이 함께 계시고 남편이 항상 제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고통과 시련의 긴 늪을 헤치고 이제 간신히 도달한 생의 길목에서 수기의 주인공 고 율리아(종순)씨는 자신의 앞날을 이렇게 털어놨다.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말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서두를 꺼낸 고 율리아씨는『하루 빨리 생활이 안정돼 아빠와 함께 미사에 참여하고 가고 싶은 곳을 함께 가는 일』이 소원 이라고 했다.
스물두살에 지금의 남편 최 베드로씨와 만나 2년 후 결혼 어느새 12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소녀의 애띤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전신에는 삶과 싸워온 흔적들이 역력하다. 흘러간 12년이란 세월은 두 사람에게 살을 오려내고 피를 말리는 절망과 고통의 나날이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자정이 넘도록 가게일에 쫓기고 콩나물 기르기에 눈코 뜰사이 없이 바빠도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의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됐다. 그야말로 살기위한 처절한 투쟁이었으며 삶을 향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준 산 증거였다 그래서 율리아씨에게는 늘 수면이 부족했고 잠 한번 실컷 자봤으면 하는게 소원이기도 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십자가 앞에 꿇어 기도를 마칠 때면 한없이 퍼붓는 잠을 이겨낼 수가 없단다.
『피로에 지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율리아의 모습을 보노라면 가장 마음 아프고 견디기 괴롭다』고 말하는 베드로씨는 그토록 고생하는 아내를 조금도 도와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사실 남편 최씨가 원호 대상자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고 양가 친척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편을 살리고 두 사람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율리아씨의 집념이기도 했다. 『사람이 병들어 죽어가는데 돈이 없어 약 한 첩 못 사쓰고 수술을 못하는 기막힌 현장을 목격한 후 돈 없으면 아빠도 죽는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슨 큰 돈을 번 것도 넉넉한 재산을 가진 것도 결코 아니다. 연약한 여인의 의지로 구멍가게를 보고 콩나물을 길러 수시로 발생하는 남편의 병을 간호하면서 그동안 가게가 달린 조그마한 방 두칸의 집을 마련했고 집 뒷편에 터를 조금 사둔 것이 전부다. 여기에다 금년 봄 처가 측의 도움을 얻어 17평 규모의 콩나물 양식장을 만들어 앞으로 콩나물 재배에 전념할 생각이란다.
이제 일상생활을 크게 걱정 안 해도 꾸려갈 수 있다. 항상『저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젠 우리의 생활이 한없이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으로 느껴진다.』는 고 율리아씨. 그에게는 남편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건강을 유지해 주는 일이 가장 소중한 바램이다.
남편만 건강하다면 자식이 없는 슬픔도 가진 것이 넉넉지 못한 아쉬움도 그리고 갖가지 불편과 부자유스러움도 하느님의 품속에서 용해시킬 수 있다. 조카아이들이 자식의 재롱을 대신 떨어주며 십여명의 대자ㆍ녀들이 한 가족처럼 서로 아끼고 보살피며 다정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살아가기 위해、또한 불구의 남편에게 삶의 의욕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기위해 험난한 세파를 견디어내며 억척스럽게도 살아온 율리아씨의 지난날은 이제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부푼 꿈의 미래를 기약해 주고 있다.
율리아씨는 말한다. 『주님께서는 인간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은 결코 주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기도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꼭 들어 주셨습니다.』율리아씨는 괴로움이 클 때마다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 괴로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고 했다.
보잘것없는 자신을 바쳐 꺼져가는 한 생명에 재생의 불을 지피려 노력해 온 지난날이 결코 찬사를 받을 일도 자랑거리도 아니라고 겸손해 하는 고 율리아씨… 지금까지 수기가 연재되는 동안 국내외에서 격려의 글을 보내주거나 직접 찾아와 위로해준 독자들과 수만 형제자매의 뜨거운 성원에 보답키 위해서도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했다.
※지난해 1월부터 연재돼온 역경을 이긴 사람들 제1화 고 율리아씨 편은 48회로 막을 내렸읍니다.
인간이기에 가난과 질병、정신적인 방황 등으로 많은 고통을 되씹으며 괴로워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고통을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신앙의 힘으로 견뎌 이긴 이들은 이제 웃으며 생활해 나가고 있읍니다.
본사는 제1회에 이어 제2화로 이 베다씨의「파도」를 다음호부터 연재합니다.
지금까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격려와、그리고 투고를 바랍니다.
<편집자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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