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을 사흘 앞둔 지난주 나는 나이에 걸맞잖게 회향(懷鄕)의 정에 가슴이 부풀어 고향땅을 밟았다.
마산에서 뱃길로 시간 반 남짓. 거제도 서해바다는 예나 다름없이 암청색으로 짙게 물이 들어 있었다.
겨울바다라서 다소는 바람차고 을씨년스러웠지만 향수는 더없이 나를 안으로 이끌었다.
내 고향은 거제도 서해 낙도. 칠천도(七川島)라 불리우는 이 낙도에도 해방과 더불어 주님의 복음이 전해졌고 그 복음을 알리는 나직한 종소리는 이 섬에서는 유일한 공소의 종탑에서 쉴새 없이 울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간간이 바람 편에 들려오고 있었다.
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이 고도에 드디어 천주교 공소하나가 들어선것이다 알고보니 이 공소는 지지난해 그곳 공소신자들의 열성어린 모금과 이를 귀히 본 마산교구청 산하 몇몇 유지들의 조력에 의해 세워진것이었다.
지난 해 나는 이공소를 둘러보고 뜨거운 감회에 사로잡혔었다. 그리고는 그들의 놀라운 신덕과 자립에의 의지에 심령에서 우러나는 감사와 찬사를 마지않았었다.
신자라야 고작 15명、그것도 겨우 5세대가 모여서 이룩한 애틋하기 그지없는 신앙가족. 그러나 그들의 가슴속에는 주님께로 향하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사랑의 불꽃이 활활타고 있었다.
그해 나는 사흘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주일 예절에 참여도하고 일곱명에 불과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가를 가르치며 그들에게 장시간 복음적 일화 등을 들려주곤 하였었다 내가 그들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런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때도 그들 공소 신자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렇다할 성물은 물론 반주용 올겐 한대도 없이 멜로디온의 서글픈 가락에 맞춰 연신 조가비 같은 입술을 놀리던 그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공소에 뜻밖에도 새해 들어 은인이 생겨 올겐 한 대와 그밖에 영적 선물 한꾸러미가 주어진 것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나는 그들에게 나름대로의 촌지를 아끼지 않았지만 멀리 서울 K본당에서 보내진 이번이 올겐 한 대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더없는 고마움이 아닐수가 없었다.
내가 그 올겐을 육지에 풀고 연락을 취했더니 즉시로 그곳 회장이 짐군을 앞세우고 부두로 달려왔고 이튿날 내가 그들과의 약속대로 공소에 갔을 때는 20명도 넘는 어린이가 이 진귀한 보물(?)앞에 모여앉아 있었다. 그들 중에는 호기심삼아 덩달아 나온 비신자어린이도 몇몇 섞여 있었지만 아무튼 일년전 만해도 열명 미만이던 어린이가 삼배수로늘었다는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면전에서 어린주님을 뵈읍듯 기쁘고 흐뭇했다.
그날 나는 한사코 목에 걸리는 가시 같은 아픔을 스스로달래면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며 오랫동안 올겐에 매달려 목이쉬도록 성가를 가르쳤다. 장엄한 메아리가 파도를 거쳐 때마침 모색 짙은 황혼녘을물들이고 있었다. 이와 때를 맞춘듯 만종소리가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더니 올겐의 음향과 조화가 되어 아득히 하늘위로 여울져갔다.
다음날(구정)도 나는 그들을 찾았으며 그들과함께 공소예절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었다.
『…주여!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소…. 이들을 도운 은인들도 함께 기억하시고 다시는 이들을외롭지않게 당신의따스한 품속에다 안으소서. 인자하신 어머니 성모마리아시여 이들을 도우소서. 이들의영육을 아름다워보시고 당신의 전구하심이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게하소서』 내가 눈물로 이런 기도를 바치는동안 그들도 나와함께 소리없이 울었었다.
-주님사랑은 파도를타고 그들 가슴속속들이에 성상(聖像)을 조각하는 메아리를 지폈다. 나는 분명 그런 소리를 심안(心眼)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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