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일 전 우리성당에도 드디어 대망의 종 하나가 생겼다. 어느 갸륵한 독지가가 기증해 온 것이다.
기증자의 말에 의하면 이 종은 프랑스에 특별히 주문해서 들여온 것으로 종신(鍾身)은 크잖으나 그 음색이 유달리 곱고 맑아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족하리란다.
그로부터 사흘 후 주일을 맞은 우리는 높다랗게 치솟은 종루를 우러르며 타종식을 가졌다. 간단한 의식을 거친 다음. 신부님이 종루로 다가가서 밧줄을 잡으셨다. 미구에 종소리가 울릴 것이다. 우리는 소녀처럼 사슴을 달막이며 일제히 창천으로 시선을 모았다.
이윽고 종신이 위로 살짝 치뜨더니 예감했던 대로의 종소리가 한댕이 무쇳조각 언저리에서 번져나기 시작했다. 순간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전율이 가슴에 와 닿았고. 그 전율의 파문이 다시 종소리와 어울려 사방으로 퍼져갔다. 신자들은 약속처럼 성호를 긋고 깊은 감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신부님은 이런 표정 위에 조용한 말씀을 내리시었다.「당신들은 저 종소리를 귀담아 들으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시오. 그리고 그 사랑의 일치 안에서 주님을 뵈오시오.」
비교적 종소리에 민감한 나는 입교 전에는 주로 범종소리를 듣기를 즐겼었다. 그 얼얼한 여운(餘韻)을 끌고 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서 말할 수 없는 감회와 향수를 느꼈었다. 볼가에선 이종을 득도의 한 방편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종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교회의 종을「앙젤레스의 종」이라고 부르는데 이는「천사의 종」이란 뜻이란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뢴바 천주 강생의 현의가 드러났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리라. 그러기에 우리는 하루 세 번 삼종의 기도를 바치며 주님의 강생을 마음에다 새긴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은 언제부터 교회 전례의 도구로 쓰여 졌을까? 브리태니카 사전에 의하면 크리스찬 시대의 종은 사원이 생기면서 비롯됐는데 四세기 경. 캠파니아 노우라의 교황 피오리나스 재위 시에 제조되었다 한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종은 교회가 창건되면서부터 사용되어 왔음이 확실하다.
그리고 현존하는 종중에 제일 큰 것은 소련에 있는 콜로콜(종의 왕)이란 종인데 무려 무게가 193톤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기록을 들추면서 또 다른 사실도 알게 되었다. 쟌다르크가 화형을 당한 프랑스의 고도 루앙에서는 일몰 때면 으례히 백개의 종이 한꺼번에 울리며 벨지움에서는 까리용(종악)을 울려서 사람들의 심기를 천상에로 이끈다는 것이다. 참 부러운 이야기다.
이런 종에 대한 기록을 살피다가 나는 문득「나이야가라」란 영화의 한 장면을 회상 했다.나이야가라 폭포위에 세워진 고색창연한 사원의 종탑. 그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종악의 멜로디가 지금도 내 귀에 생생히 파고든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마지막 자연에서 신천지에 울려 퍼지는 그윽하고 성스러운 종소리로 끝이 난다. 주인공은 그 종소리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종소리를 「천상의악기」에 비유한 시인이 있다. 나도 이런 비유에 짙은 공감을 느끼거니와「乞僧聞鍾笑」란 싯귀 역시 이런류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리라.
명동 대성당의 종소리조차 도심의 소음에 묻혀 잦아진 오늘 새삼 나는 신운(神韻)감도는 종소리가 그리워 고개를 든다.
그리고는 밀레의 「만종」을 마음에 그리면서 우리성당의 유일한 종소리에 귀를 세운다.
x x
<지금까지는 방송인이며 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 부회장이신 金현씨께서 수고해 주셨읍니다. 이번호부터는 한국 문협 및 한국 시조 시인 협회 회원이신 洪俊五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읍니다.><편집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