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은 인간의 수명연장을 위한 탐구에 새로운 경지를 열어가고 있다.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腸器移植 수술 등 각종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醫術이 발전한다면 21세기쯤에는 人間수명이 1백세~1백50세까지 연장될 것으로 未來學者들은 내다보고 있다. 버나드 박사가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을 성공했을 때 전 세계가 그토록 흥분했던 것도 이것이 인간생명의 한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의 연장수단으로 흔히 쓰여 지는 장기이식도 현재로서는 아직 그렇게 손쉬운 일인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고도의 기술과 정성이 필요하다. 설사 기술적으로는 완벽한 수술이 이루어졌다 해도 세포조직의 거부반응이라도 나타나는 날이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고 말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요장기의 손상으로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사람이 싱싱한 장기를 제공받는 일이란 수술의 기술적 어려움 못지않게 어려운 형편이다. ▲예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몸은 소중하게 간직해야만 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비록 자신의 몸이긴 하지만 이를 함부로 다룬다면 막심한 不孝의 죄를 범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요즈음도 아직 시골 같은데서는 밤에는 손톱을 깍지 못한다느니. 잇빨을 뺄 때는 어떤게 해야만 된다는 등등의 禁忌사항들이 많다. 그런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어두운데서 자칫 잘못해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소중한 신체부위를 상하기라도 하는 일을 막기 위한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思考에 젖은 한국사회에서 人體의 장기를 제공받는 일이 그렇게 손쉬운 것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 장기공급이 힘드는 것은 각막이식 수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비교적 간단하고 성공률이 높은 각막이식 수술이지만 아직도 앞 못 보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수 없이 많다. 이것은 안구 제공자를 찾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는 몇몇 사형수들이 참회의 뜻으로 안구를 남기고 죽는 것이 고작이었다. 일반의 경우 자신의 死體를 바치고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로 여겨져 왔다. ▲그런대 이처럼 장기제공자가 없는 메마른 사회에 서서히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난해 폐암으로 타계한 한 신자의 정성이 차가운 이사회에 사랑의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내 눈을 받고 광명을 찾아 크리스찬이 되어 내가 못 다한 일을 해달라』는 심재식 여사의 유언은 그대로 실천됐고 이것은 굳게 닫혔던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심 여사의 壯擧는 그야말로 겨자씨 한 알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