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다. 앙징스런 꽃가지들이 미풍에 간들댄다. 벌써 군항에서는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이고 개화전선의 북상에 따라 서울서도 내주(來週)께는 꽃구름의 사태(沙汰)가 나리라는 것이다.
무릇 목숨 있는 자. 삼동(三冬)의 모진 신산을 견뎌내지 아니하고 어찌 무상(無償)으로 이 봄의 태탕을 맛보랴싶다.
나는 새삼 봉당에 나앉아 지난 겨울의 한기를 생각하며 이봄의 세례 앞에 옷자락을 여민다. 대체 이 고운 빛살은 어느 분의 역사(役事)인가.
<봄의 序章>이란 拙詩가 생각난다.
한겨울 지향하던 마음 있어/해질녘 늪에 서면/들녘은 온통 보래빛 彩霧/나긋이 바람은 나무의 볼을 쓰담고/저녁연기 휘감은 山머리엔 軟紅빛 노을이 곱다/오늘 비로소/江물은 내 어깨 쭉지로 부터/내려앉는 鮮放感/진흙바탕에 묻힌 蓮꽃같은 목숨들이 復活하는 들머리/해질녘 江邊에 서서/겨울을 벗어본다/아직은 발이시리다/
이런 拙詩를 두고 未堂 徐延柱 선생은 나를 이렇게 評했었다.「…마치 길에 즈이 부모를 놓쳐버린 迷兒가 그 잃은 부모의 가문을 찾아 헤매다가 오랜만에 그걸 찾듯이 씨는 현대인이 많이도 잃고 있는 그 自然家門을 되찾으러 念願해서 거기 復歸하기는 분명히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라고.
나는 분명 그랬었다. 말라버린 信心과 놓쳐버린 자연을 찾아 迷路를 헤맸었다.
겨울이 한 꺼풀 農裳을 벗고/돌아서는 夕陽은/해도 하늘가 포근한 둘레를 돌아/선연히 이마에 다가서는 山/눈 감으면 이제 사 江물 풀리는 소리/裸木은 가지를 뻗고/되려 脈이 풀렸다.
얼마나 겨웠으면 되려 脈을 놓고 앉았는 겨울나무의 신세임을 자처하던 그날의 나. 그러나 나는 결코 기진(氣盡)하진 않았다. 나올 밖이다.
波浪져오는…/모세가 예지로 닦은 채찍 같은 여울이다./마른 가슴에 하늘이 울고/비로소 으깨이는 磐石같은 나의 요동/(중략)나는 지금 바람 속救援을 믿고 있다./天門을 열면/비로소 비낀 햇살에 浮動하는 山嶽이여./(꽃바람 속에서)
이토록 나는 오랜 고한(苦恨) 속에서도 구원을 믿고 復活을 갈구했다.
이제 정녕 봄은 우리 앞에 다가 왔다. 한차례의 세척을 하고 땅의 얼굴은 욕실의 여인처럼 화색이 돈다. 스멀스멀 비늘이 돋는 뜨락의 나무들도 머릴 빗었다. 분명 復活의 조짐이리라.
이 싱그러운 기별 앞에 우리는 視力을 모아야한다. 햇살에 묻어나는 물결같이 부신 속을 달려서 가자. 지금은 만인이 눈을 부비고 살아나신 주님을 맞이할 때다. 햇방울이 문지(門紙)를 열고 다락방에 떨어진다. 시력 앞에 선연히 깃 터는 소리.
마음의귀를 세워라. 장한기별이 하늘의 꼭지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매화 한그루가 暗香에 겨워하는 마당귀에서 수탉이 햇씨를 쪼고있는 그림이 연상된다. 이날쯤 暖室에 앉아보라 마주보는 산마루도 이순(耳順)하지 않는다.
수난과 죽음의 四旬節을 몸소 체득한 분이라야 스스로의 復活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권능이 사악을 물리치고 당신 외아들을 죽음에서 살린 날 .우리는 알렐루야의 함성도 드높이 각자의 마음 안에 목련 꽃 같은 환희의 등불을 매달아야만 한다.
人間社會의 低價値性들. 이것들을 모조리 팽개쳐버린 후라야 주님의 復活에 同參하게 될 것이다.
永生의 參差妙味를 실감케 되는 이날. 아지랭이 사물대는 4월의 융융한 이내 속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 양들을 몰고 天上에로 나아가는 그 길목을 우리도 함께 지켜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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