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동화속의 주인공 같은 생각이 든다. 20여 년전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 군내에서는 음악콩쿨 대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독창부문에 뽑혀 읍내에 가게 됐다. 이때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때의 저 사람은 내 생각은 무엇하는 사람이며 어째서 저렇게 이상한 옷을 입었을까? 학교에 갈 때가 올 때 이상한 옷을 입은 그사람 생각에 선생님 말씀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초여름) 이웃동네 친구가 내일은 일요일인데 너 우리 동네 놀어 올래?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도 있고 코가 뽀족하고 키가 큰사람도 와서 미사를 드린다고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약속을 하고는 미사가 무엇인지 알수 없었으나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만 만날 수 있다가 다음날 약속장소인 이웃 동네에 갔다. 아이구, 이게 웬일인가. 몇 달전 읍내에서 본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 왔다. 이번에는 한사람 더 나왔다. 이건 정말 이상한 웃이다.
미사가 시작되니 조용히 하라고 하더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미사가 끝나고, 나가는 길에 키가 큰 사람이 내게 가까이 와서 너 참 예쁘게 생겼구나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다음 일요일에 또 와서 노래도하고 교리도 배우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더욱 놀랐다. 저 이상한 사람이 우리말을 하는구나 노래는 노래인데 가사도 이상하고(지금의 성가37 감사가) 교리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나는 왜 이렇게 이상한 것만 보고 이상한 생각만 떠오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만나기기를 원했던 그 사람을 만나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집에 와서는 전보다 더 맘속깊이 생각했다.
다음 일요일 또 다음…일요일만 손꼽아 기다려서 가봐도 그 사람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공소도 아니고 마을 신자 집에서 일년에 한 두번 미사만 드리는 것이다. 그후 3년 뒤에 다른 동네에 공소가 세워졌다. 그때에 그 마을의 소문이 예수쟁이가 들어와서 양반동네 망친다고 동네어른들은 야단이었다. 우리할아버지도 예외일수는 없다. 하루는 할아버지께서「예들아 이리 오너라. 저 웃동네에는 발도 들여놓지 말아라」고 말했다. 그러나 몰래몰래 3개월쯤 다니다가 끝내는 가지 못하고 나의 신앙생활은 예수가 누구인지도 알기 전에 끝나고 말았다.
그 후 어느날 추석 때 외갓집에 갔다 오는 길에 또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침 내가 탄 버스에 올라탔다. 명절 때라 차내는 복잡해서 반가운 사람이었지만 자세히 볼 수도 없고 마음만 조이는데 어떤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녀님 여기 앉으세요」하고 말했다. 그때의 내 생각은 정말 엄청난 사람인가보다. 자리를 다 비켜주고. 그때 얼핏들은「수녀님」이란 말은 잊어버리고 또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때의 우리 외갓집은 김천이고, 우리 집은 성주읍에서 조금 떨어진 면소재지였다.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은 성주읍에서 내렸다. 이번이 3번째 보는 사람이다. 그 후 10년 내가 여학교 졸업할 때에 다시 보고 만났다. 10년간 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묵상을 하듯이 생각하고 있던 중 하루는 그 사람이 성당으로 가는 것을 보고는 그곳을 찾아갔다. 거기서 10년 전에 3번 본 그 사람을 만나게 됐다. 또 그 수녀님이 나의 교리를 지도하셨고 내가 성당에 나오고 싶은 맘이 잠재하고 있었던 것도 역시 수녀님의 복장 수도복인 것 같다. 교리를 배우면서 「제 고향이 여기인데 수녀님 혹시 그곳에 계셨읍니까」고 여쭤보니 전교하러 나가 계셨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열심히 교리를 배우면서 옛날의 의문을 풀었다.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지는 못해도 수녀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됐다. 나는 교리시간에 한 번도 빠짐없이 출석하여 교리문답 책을 모두 외웠지만 신부님께서는 영세를 줄 수 없고 좀 생각해 보자며 4월에서 10월로 연기 하셨다 이유가 무엇이냐고 여쭤보니 앞으로 결혼할 처녀가 영세하고 외교인과 결혼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때부터 나는 외교인과 결혼하면 안 된다는 것이 머릿속 깊이, 내 맘속 깊이 남아 있었다. 나의 입교는 수녀님의 성의를 보고 성당에 나왔기에 지극히 단순한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 그 옷에는 신덕 망덕 애덕이 감춰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신자인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문화가 급변하고 인정이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신자이면서도, 먼저 성직자 수도자에게서도, 먼저 성직자 수도자에게서 모범을 보려고 하듯이 믿지 않는 그들 역시 신자인 우리와 비교해서 모범을 발견한 후에 믿겠다고 한다.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면 평신자인 우리는 어떤 행위로써 그들을 하나인 성교회로 인도하며 어떤 말로서 모범을 보여줄 것인가? 신자로서의 생각과 행동을 쉬지 않고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사도 성 바오로의「겸손한자는 바보같이 보이고 온유한자는 힘이 없는 것 같이 보인다.」는 말씀같이 현실은 그러하다. 나의 전교방법은 신심 서적 가톨릭시보를 사서 내가 먼저 보고난 후 빨간 줄을 그어서 선물을 하고 교도소 군대 등 여러 곳에 부쳐주며 여러번 읽어보고 무엇인가 느낌이 있으면 성당에 나와서 사랑이신 예수님을 체험해 보고자했다. 간사스러운 인간의 맘을 움직일 수 있는 분은 성신이시고 도와주는 것은 역시 사랑의 말이기 때문에 가톨릭 정통교리에 깊은 지식을 갖도록 열심히 교리를 탐구하고 신심 서적을 읽으면서 그분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신자인 우리가 서로 사랑 한다는 것은 어떤 큰 모임 앞에서 긴 설교를 하기보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형제에게 물 한 컵이라도 나누어 주는 것이 참된 크리스찬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미소한 일에 충실한자 되어 죄의식을 갖지 못하는 이 세상을 크리스찬 사랑으로 변화시킬 의무가 우리 평신자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게 해주신 분도 성신이시고 이상한 옷을 보고 입교하게 해주신 분도 성신이시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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