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파출소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이놈、야 이놈아、죽여 봐라 이놈아、죽여…』
『오냐、마음대로 지껄이고 마음대로 해라、내가 죽지 않을 만큼만 해둬. 내가 죽지만 않는다면 그땐、그땐 죽여주마. 죽기 싫어도 그땐 분명히 죽여주마』
『뭣이 어쩌고 어째 이놈아. 죽인다고、죽여 봐라、이놈아』
최 여인의 방종한 태도와 막무가내로 떠들어내는 소란을 억제시키기 위해 손순경과 예비군들은 당황하여 일제히 소리친다.
『아주머니、아주머니、왜 이래요、왜? 여기가 싸우는 곳인 줄 알아요? 이곳에서 그렇게 떠들면 안 됩니다. 싸우지 말고 이쪽으로 오시오』
최 여인의 극성은 경관들과 예비군들의 만류로 간신히 제지되었다. 한 시간여에 걸쳐 피해자 진술조서를 끝낸 그녀는 다시 나를 노려보며 한차례 욕설을 퍼부었고 손톱으로 내 얼굴을 짓갉아 놓고 나가버렸다. 당무경관 손순경은 한동안 무엇에 흘리기라도 했다가 풀려난 듯『휴우』하고 한숨을 내어 뿜으며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봐、난 자네와 조금은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자네의 감정을 듣고 싶어. 솔직담백하게 얘기해주기 바라네』
십자가형으로 묶여졌던 몸뚱아리는 손 순경의 아량으로 조금은 자유롭게 되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당겨 몰려주고 피의자 심문조서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인적사항을 물어왔고 범행동기를 묻고 조서를 꾸미고자 하지만 난 무엇 때문에 이런 곤욕을 당해야 하는지 그것마저도 알지 못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범행동기를 말할 수도 없으며 심문에도 응할 수 없읍니다.』
『뭐야? 인간적으로 대할 때 대우를 받아、임마』
『사실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난 아무대답도 할 수가 없읍니다』
『하、이 새끼가 악질이네요. 좋게 얘기할 때 순순히 대답해』
『난 정말 할 말이 없읍니다. 죽일 테면 죽이고 살릴 테면 살리시오.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읍니다』
『야 임마、네 아무리 발악해도 소용없어、피해자가 이렇게 얘길 하잖아?』
『피해자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대답하란 법은 없읍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그렇게도 서류가필요하다면 만드십시오. 나도 고통을 당해야만 은혜를 갚을 굳은 각오가 설테니 까요』
그는 나의얼굴을 꿰뚫을 듯이 노리다가 갱지위에 임의로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읽어봐』
『내게 필요한게 아니니 다인이나 읽어보시오. 당신에게 부담을 끼치지는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일락 서산하고 땅거미가 끼일 무렵 난 동부산 경찰서에 압송되었고 다시 존속살인 미수 죄명으로 긴급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유치장 간수의 지시에 따라 몸수색을 마치고 제2감방에 입감되었다. 수사 범죄자의 거실인 제2감방에는 십여명의 유치인이 수가되어 있었고 삼복의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웃옷들을 벌거벗은 채 씩씩거리고들 있었다. 그중엔 최여인의 남편인 인규의 친구이자 사형간인 최덕수도 함께 있었다.
『이군!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그럼 당신은 여기 웬일이요? 뭔가 조금은 잘못된 데가 있으니까 이런 곳에 온 게 아니겠어요?』
『이 사람아 나야 직업 탓이지만 대체자넨 무슨 일인가?』
『그렇게도 알고 싶거든 덕망 높은 면장님에게나 최 여사에게 가서 물어보시오』
난 그가 형 인규의 친구라는 데서 이유 없이 화가 났으며 악녀 최 여인이 친족이라는 데서 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1968년 8월22일. 하나의 원한을 이태한 채 대지는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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