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를 담당한 경찰관이 접견부를 들고 들어왔다. 하루에 두 번 있는 유치인 면회시간 이었다. 최덕수를 위시하여 몇 명의 유치인들을 호명하여 불러나갔다. 잠시 후 면회를 마치고 돌아온 최덕수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군! 면장에게 자네의 소식을 전했네만 아무런 반응이 없더군.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죄명도 무거운데 손을 쓰지 않으면 고생할거야』
『최선생! 걱정해줘 고마운걸. 당신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끄고 내겐 말 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낸들 듣기 싫어하는 말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닐쎄. 자넨 친구의 동생이며 나와는 남보다는 가까운 사형간일쎄. 보기가 딱해』
『보기가 싫으면 보지 않으면 돼. 그토록 보기가 딱해 얘기가 하고 싶다면 당신의 성씨를 바꾸고 얘기해. 그 최가 성씨를 말이야』
면회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다시 나의 이름도 호명됐다. 난 두팔에 수갑을 채이우고 면회실이 아닌 형사실로 연행되었다. 형사실 문턱을 들어서는 순간 난 현기증을 느끼며 몇 걸음을 비틀거리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아니! 수녀님들께서、그리고 어머님들께서 어떻게…』
『방송으로 알았읍니다. 아니기를 바랬는데 사실 이었군요』
『수녀님、그리고 어머님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미안합니다. 하지만 안심하셔도 좋읍니다. 전 비록 이곳에 갇혀있을지라도 추호도 양심에 어긋남이 없기 때문 입니다』
『다행이군요. 하지만 우리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도 있다면…』
『수녀님 그리고 어머님들의 성의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창규씨! 우리가 창규씨를 돕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것 뿐이지요. 모든 이들이 살인죄라면 한결 같이 중죄라고들 하는데…』
그들은 나의 초라하고 초췌한 모습에 말끝을 잇지 못하고 연신 마른침을 꿀꺽 소리내어 삼키고 있었다.
『괜찮읍니다. 법관들이 공록을 먹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하지만 다음엔 내 차례가 되겠지요. 그네들이 날 죽이려 한 것처럼 나 또한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진 내 생명의 빛、그들 욕심이 잉태한 죄의 댓가를 난 나의 가냘픈 생명을 걸고 지불할 것 입니다. 인과 응보 그리고 상선벌악의 진리를 입증시키고 말 것입니다』
『창규씨! 마음이 괴로울 때면 기도하십시오. 창규씨의 마음에 평화가 임하기를 우리는 기도 하겠읍니다. 그리고 건강하십시오』
면회를 마치고 감방에 돌아오니 점심식사가 운반되어있었다. 도시락 속은 밤알들이 제 밭으로 돌아가려는 듯이 생기 왕성하여 저마다의 얼굴들을 드러내며 치솟고 있었다. 난 도시락을 앞에 놓고 머리를 숙였다. 양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대신하여 그 밤을 받아먹음으로써 꺼져가는 나의생명을 연장하여 원수를 갚을수있는 힘을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다시 5일이 지났다. 부산지방 검찰청 제 7호 검사를 위시하여 3명의 경관들에게 연행되어 현장 검증을 나갔다. 최 여인의 진술에 따른 각본대로 그들의 꼭두각시가 된 채 몇 번인가 카메라의 촬영 모델이 됨으로써 현장검증이 끝난 것이다. 난 검찰의 관용지프에 몸을 실으며 그들에게 전송인사를 하는 최 여인을 향해 히죽이 웃어 보였다. 다시 5일이 지난날 교도소로 압송되고 검찰의 심문을 받았다.
『법이란 바른말을 하고 동정을 받는 거야.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숨김없이 대답하는거야. 자네의 인생전체가 걸린 중대한 일이니까…』
『알겠읍니다』
피해자를 위주로 하는 검찰의 심문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귀찮아졌고 급기야는 그가 묻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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