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주 외로움을 탄다. 그리고 이런 때 원하는 것이 애정이라고 판단하게 되어 처방전 (處方箋)에도 이 글씨를 담아놓는다. 하지만 실지로 가능한 지혜인가를 서서히 회의하기 시작한다.
어느 책에선가〈사랑받고 싶음으로 하여 너무나도 사람을 사랑하는〉비극적 사례들을 논평하고 있었고 또 다른 책에는〈사랑이 배신한 일은 없다. 단지 너는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었다.〉고도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쉽사리 사랑이라는 말과 내용을 의도 (意圖) 하지만 번번히 힘에 겨운 공론(空論)이요. 끝내는 허망(虛妄)에 빠져 허위적거림을 깨닫도록 하는 고언(苦言)들이라 하겠고 그 말투에는 어느 만큼의 연민이 함께 느껴져 야릇하게 기가 꺾이고 만다.
때로는 몹시도 참담한 좌절의 와중에서 지푸라기를 붙잡듯이〈사랑〉을 꿈꾸는 경우도 있다. 위장이 나쁜이가 단번에 포식할 수 없듯이 쌍방의 큰 무리를 초래하여 보다 나쁜 결과를 가져와 버린다.
결국 삶과 사랑의 다난(多難)을 만감으로 탄식하면서 한편 생각지도 않았던 위안에 손잡히는 일이 생긴다. 외롭다거나 고통으로 여기던 그 원점의 상황에 되돌아가서 새로운 시선으로 살펴본다. 버렸던 것을 주워 올리고 닫혔던 문을 열며 의미를 포기했던 것에서 의미의 조명을 준다.
확실히 변화가 일어난다. 못 견디겠던 일도 그렇지만은 않고 또 못견뎌봤자 이만일쯤으로 사람의 한평생이 거덜이야 나겠는가 싶어지며 허약한 근력을 겨우 수습 한다. 아울러 준령의 고갯길을 한발 넘어선다.
요는 삶을 따라오는 갖가지 성질들 중에서 얼마만큼을 용납하고 화친할 수 있는지의 그 포용능력에 인생은 많이 달려있는 것만 같다.
아침에 세수물을 받으려고 수도꼭지를 돌렸다가 새삼스런 충격에 붙들렸다. 수정을 녹인 듯이 맑고 영롱한 물줄기가 수도관의 한 치 저편에서 한밤 내 아침의 첫 신호를 기다려주며 있었던 사실.
좔좔 물소리를 내며 세면대에 가득 담기는 물속에 두 손을 담그니 울고 싶도록 가슴 뿌듯한 감격이 치받는다. 손안에 담아 올리니 손가락 새로 차가운 명주실처럼 흘러내리는 그 청징냉쾌(淸澄冷快) 한 것. 흐르는 아름다움、힘을 뺀 유순한 투신(投身).
삶의 기쁨이 불시에 솟구쳐 올랐다. 처음으로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듯이 시계(視界)의 전부가 몹시 신선하고 보이지 않는 공기조차 건강한 역동감으로 눈앞에서 부풀고 있었다.
가전기(家電機)들의 고마움. 손끝으로 순식간에 음악을 울려낼 수 있고 창문을 여니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6월 아침의 빛과 꽃향기들. 막 잠을 깬 창공.
내가 딴사람이 되었나?
전에는 결핍된 것들만 헤아리곤 했는데 오늘은 넘쳐나는 충일에 어리둥절 한다. 우습기도 좀하면서 가닥가닥 행복감이 피어오른다. 씻은 피부에 바르는 로숀、화장끝에 조금 쓰는 향수 스프레이도 유난히 즐겁다. 기쁨은 깊고 억센 뿌리에도 있으면서 사소하고 미세한 것들、풀잎 끝의 이슬과 실오리의 바람들에도 많이많이 실려 있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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