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사회에서 널리 많은 존경을 모아왔던 尹亨重 신부가 지난 6월 15일 오랜 병환 끝에 선종하였다. 그리고 그의 영결미사는 명동대성당 안팎을 꽉 메우는 교회와 사회 각계 인사들의 애절한 추모 가운데 봉헌되었다.
본지는 먼저 尹 신부의 생전의 갖가지 遺德을 기리면서 그의 하느님 안에서의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기원하는 바이다.
故 윤 신부는 철저한 성직자로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대로 살면서 나라와 겨레、교회와 이웃을 위해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문자 그대로 살았던 분이다. 이제 그 고귀한 발자취를 더듬어가며 그의 거룩한 모습을 되새겨 보고자한다.
윤형중 신부는 한마디로 말해서 福音의 使徒였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앙화를 입어서 마땅하다고 여기는 윤 신부는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의 양식처럼 생각하였고 또 복음전교만이 24시간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그의 永訣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 중에『윤신부의 생애는 생활자체가 복음을 증거 하는 것 이었다』고 강조하면서 그를 한국의 바오로 사도에 비겨서 말했다. 이는 결코 과분한 찬사가 아니고 진실을 말한 것이었다. 이를 증거 할만한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첫째로 윤 신부는 꺼질줄 모르는 전교열과 그의 타고난 學究心과 文筆力을 동원하여 저작한「詳解天主敎要理」는 투철한 理論과 신앙을 깊이 박아주는 迫進感이있는 不朽의 名作이었고 당시의 유일무이한 교리교본이었다. 그리고 둘째로는「知性人敎理講座」를 빼놓을 수 없다.
6ㆍ25동란이후의 사회적불안과 정신적 공백기에 있어서 윤 신부가 부산과 서울서 일반 지성인을 위해 실시한 교리강좌는 실로 많은 지성인들에게 큰 감동을 준 명강좌 이었다. 이 강좌에 모여든 求道者는 한때 명동문화관을 초만원으로 메꾸는 가톨릭 복음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로인해 수많은 지식인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계기가 된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기억할만한 에피소드의 한 토막으로 당시의 유일한 지성인을 위한 대잡지「思想界」에서 전개되었던 윤형중 신부와 함석헌 옹과의 사상논쟁은 사회지성인들의 큰 관심의 표적이 되었고 천주교의 사상 理論家로서의 윤 신부의 존재는 혜성같이 빛났고 그로인해 또 천주교에 대한 일반지식인들의 理解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사실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윤 신부가 경향청년사 경향잡지사 및 경향신문사의 책임자로서 전후 15년간을 역임하면서 교회 매스콤을 창시하였고 또 육성하여온 공적은 교회안과 사회 안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경향신문은 천주교회가 내놓은 유일한 사회지이며 四大新聞의 하나로서 한국의 民主化에 대해 교회의 福音的 입장에서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는 것을 세인이 共認하는 바이다. 이때 윤 신부는 복음과 정의와 사랑의 筆鋒을 꺾지 않고 꾸준히 수호해온 言論人으로서의 사도직을 충실히 지켜왔었다.
윤형중 신부는 한편 正義의 使徒이었다. 그는 정의를 위해 일하다가 박해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한 예로서 우리나라에 올바른 민주주의가 빛을 잃고 인간의 기본자유가 제한되고 사회부조리가 무성한때에 은퇴 중에 있던 윤 신부는 한때 민주회복운동에 가담하여 그를 대변하는 역할까지 감행하는 용기를 나타낸 일도 있었다. 이 또한 윤신부가 일생을 진리와 정의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하나의 證佐라고 할 수 있다.
윤형중 신부가 또한 사랑의 사도였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평소 그를 접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투철한 언론 가운데서도 온화한 사랑을 담뿍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생활에는 철저한 청빈을 살면서도 항상 가난한사람 불쌍한 사람을 돕는 데는 남모르게 마음을 쏟아왔다. 그 일례로서 윤신부가 병환이 중해지자 주위에서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고 했을 때 자신보다 더 필요한 이가 병설을 차지하기위해 이를 거절하였다는 사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윤 신부는 성모병원에서「眼銀行」을 시작했을 때에 제일착으로 자신의 눈을 기증하였고 사후에 이를 실천하여 즉시로 두 사람의 실명자에 빛을 되찾게 했다. 이는 성모병원에서 안은행 설치 후 정상적 눈 기증자로서의 실행 첫 케이스로서 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윤 신부는 살아서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의 헌신을 다하였고 또 죽어서까지 자신의 신체일부를 산 이웃을 위해 바쳐준 사랑의 不死의 證人이되었다. 그것은 단 두사람에게 빛을 준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빛을 준 것이다. 거듭 윤신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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