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년 9월、영국에서의 종교탄압을 피해 네델란드로 이주한 淸敎徒 102名을 실은 배가「폴리머드」港을 떠났다. 이 배가 바로 자유와 평등、그리고 평화의 대륙 新天地를 向해 목숨을 건 항해 길에 오른「메이플라워號」였다. 이들은 3個月간의 千辛萬苦의 항해 끝에 그해 12月 오늘의 北美洲「폴리머드」에 상륙했다. 긴 항해 동안 추위와 굶주림、그리고 괴혈병으로 이들 중 반수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美合衆國 건설의 밑거름이 된 이들은 上陸직전 배안에서 저유명한「메이플라워 계약」을 맺었다. 乘船者 전체의 의사로 채택된 이 계약은 多數의 自由意志에 의한 정부수립을 결의한 것으로서 오늘날 西歐 民主主義의 龜鑑이 되고 있는 美國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이는 美독립선언에 이어 링컨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국민의 정부」로 표현된 主權在民 선언으로 더욱 具體化되었다. ▲今般 한국을 방문、血盟의 友邦으로서 한국守護의 결의를 再國明한 카터 大統領이 오늘날 부르짖고 있는 소위 道德政治ㆍ人權外交의 脈絡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는 淸敎徒들의 강렬한 自由에의 念願 그리고 이를 갈고 닦아온 全美國民들의 自由民主主義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國際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美國內에서 까지 많은 雜音을일으킨 이人權외교는 그 정치적 성과는 且置하고 독실한 크리스찬인 카터의 종교적 良心에서 비롯된 하나의 信仰告白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카터는 선거演說때「愛主愛人」을平素 그의 左右銘으로 삼고 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고통받고 소외된 者들을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그의 이 굳은 意志에서 우리는 카터의 人權 外交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항상 弱者의 편에 서는 大統領、그래서 서민 대통령으로 불리워지기를 좋아하는 카터、그리고 어떤 意味에선 平地風波마저 일으킨 그의人權外交 - 이 모든 것은 흔히들 얘기하는 하나의 단순한 정치적 제스쳐가 아닌 그의 종교적 확신에서 나온 그의 종교적 확신에서 나온 당연한 歸結이라고 할 것이다. ▲실제 政治社會에서 부딪치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까 끝내 이執念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信仰이 그만큼 두텁다는 것을 뜻한다. 그 바쁜 일과 중에도 교회의 교리교사직을 맡고 있으리 만큼 뜨거운 信心이 그의 다분히 理想主義的인 政治信念에 대한 國內外의 거센 도전도 과감히 헤쳐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고 있지 않을까? 現職 대통령 교리교사-이는 온갖 핑계로 교회 일을 미루기만을 能事로 삼고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하나의 값진 교훈이다. 특히 교리교사難에 허덕이는 우리로서는 다시 한번 깊이 새겨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