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견담당이 강당으로 찾아왔다. 난 그에게 연행되어 접견실에 들어서자 형 인규와 사촌 성규가 나란히 서있었다. 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피를 토할 것 같은 분노가 치밀었다.
『담당님 난 면회 않겠습니다』
『아니! 왜 그래?』
『나에게 온 게 아닙니다. 접수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창규야!』
『뻔뻔스런 인간들、내가 죽은 줄 안 모양이지? 아직은 교수대에 가기가 일러. 뼈를 갈아서 피를 마시우는 이 원한을 어떻게 하고? 내 죽지 않고 출감 하는 날 한 올도 남김없이 돌려주리다. 기필코 돌려주리다』
『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개새끼. 박쥐같은 새끼』
난 접견실에서 교도관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끊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길이 없어 몇 번 인가 창살을 들여받자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려 청의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포승과 수갑은 어느 결에 나와 필연적인 상사를 맺고 있었다. 난 40여명의 수인들과 함께 수갑을 차고 팔과허리를 졸리운 채 출정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법원과장에 이르자 수많은 수인 가족들이 정거하는 버스를 잡고 매달리며 아우성 들이었다. 일부 교도관들은 일명 병아리 통이라고 불리우는 법정대기실의 문을 열고 차례로 하차시켰다. 난 잠시후에 있을 구형공판을 연상하며 초조한 마음을 가눌수가 없었다. 병아리 통 벽 한쪽 귀퉁이에 새겨놓은 낙서 한 귀절이 유난히 나의시선을 끌었다. <일시적인 과오로서 이팔청춘 젊은 놈이 삼강오륜 저버린 죄로 사시장철 옥중에서 오곡섞인 잡곡밥을 먹자하니 육부간장이 다 녹는구나. 칠푼 되는 송판위에 팔을 베고 누웠으니 구비 구비 흐르는 눈물、십년징역 살자하니 백년같이 아득하네. 천추에 맺힌 원한、만년간들 잊을 손가?> 라는 낙서 귀절에 시선을 못 박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수인들은 교도관들에게 에워싸인 채 제1호 법정 형사합의부 재판정에 들어갔다. 연이어 방청객 입장이 있자 하늘을 나르는 파랑새의 서글픈 바램이 무심코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을 주시하다 방청석을 휘둘러보았다. 검은 수단과 봉쇄수건을 눌러쓴 수녀님들、그리고 성당의 어머님들께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연이어 법관들의 입장과 함께 개정이 되고 주심판사의 호명에 따라 난 피고석에 나가 섰다.
『지금부터 피고인의 존속살인 미수건의 사실 심문을 한다. 사실 그대로 말하고 유리한 증언이 있으면 말하시오. 본적과 주소 성명은 검찰에서 진술한대로 사실인가?』
『녜、사실입니다』
『직업은 없고…피해자 최오수의 말에 의할것 같으면 피고인은 1968년 8월22일 13시경에 위험한 물건인 과도 증제1호와 재봉용 가위 증제2호를 가지고 피해자 최오수 여인의 심장부를 찌르려다 미수에 그쳤다고 했는데 왜 이런 짓을 했나?』
『아닙니다. 본인은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한번의 폭언도 한 사실이 없습니다. 칼과 가위 따위를 휴대하지도 않았으며 만진일은 더욱 없습니다』
『부인하지 말고 바른대로 말해봐. 실제로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죽인다고 한 것은 사실이지?』
『아닙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어떻게 말할수 있습니까? 정녕 모르는 사실들입니다』
『피고인은 검찰에선 왜 이런 진술을 했나? 이것도 모르는 사실인가?』『…』
판사는 더 이상의 심문이 필요치 않음을 느낌인지좌우 배심원들과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더니 검사에게 눈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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