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만나면 살기가 힘들게 되었다고들 한다. 기름(石油)값이 그렇게 올랐으니 뒤따라 모든 물가가 줄줄이 오를 것은 뻔한 이치이고 그렇지 않아도 적자투성이인 가계를 어찌 꾸려갈까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신문에 실린 물가장관과 한주부의 대담을 읽다가 나는 그만 실소(失笑)를 하고 말았다.
파산가계 (破産家計)를 호소하는 주부에게 장관이 할 수 있는 대답이「더 절약 하십시요」뿐이라니.
국민이 엄살을 하는 줄로 아는 건지、희롱인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보다 더 절망적인 소리가 있을 수 있을까! 나라가 어려운 처지라는 것은 무식한 민초(民草)들도 다 알고 느끼는 바이다.
그러나 정작 불행은 시련이 만들지 않고 절망이 낳는 것이다. 언 손도 마주잡으면 녹는다. 먼 길도 함께 걸으면 가까운 법이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랑의 끈을 놓아 버림으로써 시련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그리고 그린 유대(紐帶)는 정의가운데서만 가능하다.
정의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을 때 가진 자는 못가진 자를 억압하고、못가진 자는 가진 자를 증오하는 분열이 필연적인 것으로 된다. 정의는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절대로 지켜져야 할 가치이다. 그것이 훼손되면 신뢰는 무너지고、애정은 깨어지고、모든 힘은 폭력화하고、작은 고통마저도 참기 힘든 것이 된다.
경제적 신화의 환상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를 요즘 우리는 가공하리만치 실감하고 있다. 이런 불안 가운데서도 우리를 인내하게 하는 것은 부(富)의 유혹이 아닌 정의의 약속이다. 진정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기름진 음식이나 안락한 이부자리가 아닌 신념과 긍지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신념과 긍지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토양에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정의는 이해 (理解)와 우의를 불러들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오해의 여지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사람에게 진정 소중한 것은 자유 이전에 정의이다.
사람이 지상에 생겨나고서부터 율법의 지배가 없었던 시대는 기억할 수 없다. 율법이전의 삶을 상상한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자연의 구속이 있었을 것이다. 역설처럼 들릴지 모르나 사람을 동여매는 것은 비리 (非理)와 부정이지 부자유가 아니다. 가진 자와 못가진자가 차별되지 않는 율법아래서는 부자유를 느끼지 않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정의가 지켜진다면 설사 가난하더라도 활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가 겪는 고통이면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탄을 달라고 집계를 들고 거리로 뛰어나와야하는 주부와 밀수보석을 두르고도「상류」의 특권을 누리는 유한부인(有閑婦人)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는 따위의 비정의가 방치된 채 이 어렵고 어두운 고비를 일방적으로「견디라」고 하는 것은 섭섭하고 노여운 일이기 조차 하다.
현실을 부정적으로가 아니라 긍정적으로 실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리라. 그러나 이것은 누구도 정의 앞에 예외가 되지 않을 때의 이야기이다. 정의-이것은 다스리는 원리이며 더불어 사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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