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풍도(風도)」의 작가 井上정씨가 제주도를 다녀간 일이 있다. 제주도의 삼별초 항몽 (抗蒙) 격전지를 본 후 그는 C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한국의 산천과 초가집은 절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 초가가 이제 거의 없어 졌다지만 이번 제주도에 가서 남아있는걸 보았읍니다
그곳 초가에는 존재할만한 필연성이 있더 군요』이 말 가운데「필연성」이라는 음미해 볼 만하다. 「필요성」이 아닌 「필연성」이라는 절실한 어휘를 골라야 할 만치 그에게 사라져가는 초가가 안타까왔던 듯하다.
이 자리에서 대담을 맡았던 鮮于輝씨는 의견이 달랐다. 우리로서는 발전의 단계에서 초가는 가난의 상징이니까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초가만은 가난의 상징일 수 없다.
튼튼하고 단정하게 엮어진 제주도의 초가는 그야말로「1풍도」를 이겨낼 만한 안정감이 있고 강인하면서도 다정한 인상을 지닌다. 이 튼튼한 초가와 근대지붕 개량을 한다고 판자집 처럼 되어버린「슬레이트」집들을 가난의 상징처럼 보인다.
완벽하게 엮어진 초가의 안정감에비하면 이것들은 도무지 바람에 견딜 것 같지 않아 불안하고 경박하게 보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표현한다. 성당의 종탑은 십자가를 정점으로 해서 하늘로 향하는 기도하는 마음을 반영한다. 외양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부도 정면에 십자가가 걸려있어 회증(會衆)의 시선이 그것을 향해 모아지는 신심 (信心)을 일으킬 수 있게 구조가 되어있다.
성당이 기도하기 알맞게 건축되는 것처럼 주택은 생활에 편리한 구조로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편리하다는 것은 정서적 안락함까지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따라서 서구식 주택에는 서구인의 전통적 사고방식 가족제도 등이 표현되어있고 한국식 주택도 또한 그럴 것이다. 서구식 주택구조는 방과 방의 독립이 중시되어 개인주의 경향을 보여주는 반면에 한옥(韓屋)은 마루방을 중심으로 양면으로 마주 방들이 놓여있어 「한가족」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회적 전통 뿐 아니라 주택에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취향과 인격까지도 표현된다. 또는 주택의 양식에 의해 취향과 인격이 영향을 받기도 한다. 주택이 그 주인의 경제적 능력을 발해 준다는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요즘 짓는 주택들을 보면 우리를 사고방식인자 취향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짐작이 갈만하다. 집들을 보면 우리의 도시는 거인들의 마을이다
특히 주택은 사람의 피부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워야 할 텐데 시멘트 콘크리트 일색의 요즘 집들은 마치 공장의 거대한 기계를 보는 느낌을 준다. 웬만한 집채크기의 대문이나 대교(大僑)의 교각 같은 필요치도 않은 콘크리트 기둥 따위는「돈 가진자 만이 행세하는」사회 풍조의 허무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다 울타리에 포로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철조망이 쳐지면 그들은 포로 신세가 된다.
돈과 허세의 포로들. 이것은 가진 자의 불행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랑은 복되도다. 그들의 집은「천국」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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