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불행하다. 그들이 불행한 것은 오로지 노인이기 때문이다. 자업(自業)의 불행이 아니므로 노인은 거기에서 구출되어야한다.
청소년과 노인의 문제는 세대론(世代論) 이전에 인간학적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다. 그들의 불행은 인권의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리다거나 늙었다고「하느님의 모상」이 훼손되는 것이 아닐 진대는 그들의 불행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문제가 청소년의 그것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청소년은「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사회의관심속에 놓이게 되지만 노인은 무관심속에 버려지고 소리 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공공활동 (公共活動)은 활발하면서도 노인들은 문제의 비중밖에 있는 것이 실정이다.
예전에 노인은 가정의 권위였다. 그러나 사회가 탈 연령적(脫年齡的)으로 바뀌면서 그들은 외로와 졌다. 우선 지식의 전문화는 노인의 경험적 지식 곧 연령적인 가치를 평가절하 시켰다. 이를 테면 집안에 어린애가 병이 나면 으레 노인의 손을 빌던 것이 요즘은 누구나 병원을 찾게 되었다. 또 노인은 경제적으로도 무력하다. 경제가 가장 큰 권세로 군립하는 사회에서 노동력이 쇠한 노인은 소외당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이처럼 노인의 소외는 우리사회의 무엇인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반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의 추방은 노인자신이 당하는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나아가서는 가정과 사회구조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사람들은 노인을 부담스러운 존재로만 여길뿐 언젠가는 그들 자신이 노인이 된다는 추상 (秋霜)같은 사실은 잊기 쉽다. 지금 세대가 노인을 버린다면 다음세대가 우리를 버릴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퍽 산술적이어서 그다지 듣기가 좋지 않지만 현실이다. 더욱이 노인의 소의는 연령적인 가족체계를 파괴하고 급기야는 가정의 모든 질서와 유대의 파탄을 일으킬 것이 필자(必至)이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노인은 생겨나고 또 증가할 것이다. 저 개발사회 일수록 저령층 (低齡層)이 많고 고령층은 적은 피라밋형(型)의 인구분포를 보이는 반면 선진사회는 고령층이 커져、가차는 역(逆)피라미드를 이루리라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 이처럼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할 노인들이 불행한 채 그 사회가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세인(世人)들은 장차 올 재앙을 깨달으려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안되니 작은 보살핌 부터라도 시작하는 도리밖엔 없다. 서울 아현동본당의 「할머니 합창대」도 그런 작은、그러나 소중한 정성의 결실이다.
세상이 위로해주지 않는 노인들에게는 성당만이 유일한 안식처일 것이다.
하느님을 찬송하는 사람은 누구나 위안을 받지만 노인들에게 그것은「전적인 위한」이리라. 비록 늙은목청을 가다듬고 부르는 성가가 썩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어떤 성가대의 찬송보다도 더 대견스러워 귀를 기울이실 것이다. 주님은 외로운 사람의 벗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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