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장마권에 들어섰는지 요즘 매일같이 비가 내리고 있다. 시골의 사정을 알수 없는 나이기에 비의 고마움을 잠시나마 잊고 우중충한 하늘이 먹구름만을 안고 있듯이 나의얼굴에도 잔뜩 찌푸린 인상 뿐인듯 싶다.
그래서 이곳저곳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일부러 명랑한척 활짝 웃어보기도 하지만 어느새 나에겐 그 언제부터인가 우울함이 마음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마음속으로 혼자 자문하면서 노트에 낙서를 시작한다. 그 옛날 어린 때를 회상하고 친구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싸우고 욕하고 울고 하던 여려가지 모습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써 표현하므로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느 곳에 살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다정했던 친구들! 빳빳이 세운 하얀 카라로 항상 빼고만 다니던 깍쟁이 같던 친구들! 그것을 보며 나는 얼마나 부러워하며 남모르게 울었는지 모른다 나도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
타오르는 향학열에 한참동안 미친듯 부모님의 마음을 태운적도 있지만 불쌍하신 부모님과 형제들을 생각하고는 나의 마음은 체념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그때부터 마음 한구석에는 우울함이 싹텄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안타까와 할 때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그 고통이 심하시겠는가? 스스로를 달래며 자신을 위로하지만 그 고통이란 이투 말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하여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모든것에 이욕을 잃었었다. 그러나 병고 앞에는 모든 것이 약해지는 것인지 그동안의 향학열도 점차로 식어가고 있었고 몇 년 동안을 그냥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배움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록 공부할 나이에서 약간의 늦은감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공부라는 것은 때가있는 것이지 언제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성 이냐시오 학교」를 알게 되었고 지금 나는 열심히 그곳에 다니고 있다.「나와 성 이냐시오 학교」- 이 학교는 불우한 학생들을 돕기 위하여 고등학교과정을 가르치고 있는데 수사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께서 바쁘신 생활 가운데도 무보수로수고하고 계신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6시45분부터 수업이 시작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업 시작전에 도착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이곳을 찾는 우리들! 그러나 피곤한줄 모르고 열심히 배우고 있다.
열심히 가르치시는 스승 밑에는 언제나 열심히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제자들이 있는가보다. 선생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속깊이 스며들곤 한다. 이곳에는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이제 중학교를 금방 졸업한 학생도 있다. 물론 나이어린 학생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어 열심히 뛰고 있지만 나도 그에 뒤질세라 열심히 애쓰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생각이 있고 나름대로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 뜻만을 채우기 위하여 배움이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재 내가 이 학교를 다니며 느끼고 생각한 점이 있다면 성적이 첫째 조건이아니라 그 사람 나름대로의 인간성이라고 본다. 좀 더 세상을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능력과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피곤하줄 모르고 생활하고 있으며 나의 최선을 다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늦은시간 기숙사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무척 가볍고 언제나나를 반기는 동굴 앞 성모님께서는 오늘날 무사히 돌아오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시는듯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고 그 앞에서 나의모습은 나도 모르게 머리 숙여 기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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