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기가 무섭게 잔치집은 붐비기 시작했다. 난 둘째 누나에게 인도되어 새신랑 자리 하고있는 큰방으로 건너갔다. 모두 나에게의 시선이 옮겨지고 눈살들을 찌푸린다. 잠시 후에 인사차례의 모든 격식이 끝나고 술좌석이 마련됐다.
『오늘은 나의 생애에 기록할만한 날이 될 것이니 술을 마시지 않으면 병이 되겠지. 이왕 좌석을 같이 하고 내게 술을 주려면 큰 잔으로 주게나. 그리고 내겐 이처럼 정종 따위는 어울리지 않아. 소주로 말이야. 저 큰대접에다 주게』
난 술잔을 권하는 새신랑 허서방에게 큰 대접을 불쑥 내어밀었다. 주저하던 그는 술을 따르기 시작했고 몇 번 인가 술 따르기를 멈추었다. 주저하던 술 따르기가 끝내 대접에다 가득히 술을 따르자 난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자네도 한 잔 들게. 내가 따라주는 술을 다 마시지 못할 때는 내 앞에서 영원히 술을 먹지 못하는 거야』
다시 술잔은 내게로 돌아왔다. 술 주전자를 치켜든 새신랑 허서방이 철부지 아우를 달래듯 조용히 타이른다.
『외삼촌 술 양을 조금만 줄입시다. 몸을 생각 하셔야죠』
『괜찮아. 오늘 같은 날 술을 마시지 못하면 오늘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네. 자네에겐 권하지 않을테니 이 대접에다가 석잔 계속 따르는 거야. 더 이상은 마시지 않을 테니까』
한잔、두잔 마지막잔을 다 비웠다. 주위의 모든 시선들은 내게로 옮겨졌고 문제아의 폭음에 놀란 토끼눈처럼 희멀거니 바라본 채 입만 벌리고들 있었다. 마지막잔을 다비우고 좌석을 박차고 일어나자 누군가가 부축을 했다.
『괜찮아 놔둬. 남에게 기대는 것처럼 추한몰골은 없어』
대사를 눈앞에 둔 긴장 탓인지 그토록 많은 양의 술을 마셨음에도 몸놀림은 조금도 허틀어 지지 않았다.
『외삼촌 작은 외할배 집에서 어른들이 기다리고 있입니더』
『응 알았다. 자기들이 부르기 전에 내발로 가려던 참이다』
밖으로 나오며 외관이 부착된 도화선을 다이너마이트에 연결시켰다. 라이타를 점검하고 소매 속의 나이프를 점검했다. 둘째누이 대동댁이 매달리고 순자가 뛰어나와 어깨를 붙든다.
『외삼촌 참으세요. 참아야합니다. 무조건 참으세요.』
『알았다. 넌 가서 행복하게 사는거야. 그리고 누나! 오래오래 사십시오. 내 몫까지 다해서 오래오래 사셔야합니다』
난 만류하는 그들을 뿌리치고 곧잘 죽모덕을 찾았다. 어쩌면 저 독한 최여인이 도사리고 있을 것도 같은 작은 기다림으로 대청마루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신발들을 주시하며 곧장 방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그 곳엔 독녀 최여인도, 그의 남편 인규도 었없다. 아버지의 원수 막내삼촌 수동과 교만하고 간교한 몇몇 아낙을 뿐이었다. 도화선에 불을 당기고 나이프의 칼날을 퉁겼다.
『봉 대신 꿩 이로구만. 이렇게들 모여서 날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 무슨 공론을 해서 날 죽이려 했는지 얘기해 보시오. 죽어 영귀가 되어 한이나 없도록 실컷 모함하고 지껄여들 봐요』
도화선 그 한쪽 끝에서는 실날같은 화약열기가 피어오르고 나이프의 퉁겨 나온 칼날에선 싸늘한 검광이 빛을 뿜고 있었다. 다시 칼끝은 막내삼촌 수동의 목덜미에 겨냥되었고 나의사지는 부르르 떨고 있었다. 죽음을 직시하는 악마들의 통곡소리는 저승으로 인도하는 영귀들의 호곡소리처럼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난 삼촌과 숙모를 그리고 큰 누이만을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방문을 열어 제쳤다. 다른 이 둘은 나가시오. 어서 어서들 나가시오. 우리는 이 자리에서 화약의 폭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요. 더 이상 악마의 씨앗을 뿌리기 전에 말입니다. 나가는 이들은 내말전하시오.
『1백83일의은혜를 갚지 못하고 간다고 하지만 영귀가 되어서라도 삼대에 이르도록 은혜를 갚겠다고 말이요. 표독스런 인간들. 죽어서 여한이나 없도록 또 한번 모함하고 지껄여들 봐. 내가 보는 앞에서 해보란 말이다. 이런 놈들아 언젠가는 이런일이 없을 줄 알았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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