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짓 하나에도 공범자 끼리는 절대적인 싸인의 의미를 지닌다. 철저한 공범자가 되어 참가한 팀이 우수한 경기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손발이 맞아야 도둑질도 한다』는 내 어릴 적 할머니의 말씀이 결국 우리 선조들의 생활지혜가 담긴 뜻 깊은 말인 것을 요즘 와서 가끔 절감하게 된다.

구수하게 사는 집을 들여다보면 그 집 식구들이 손발이 잘 맞는 공범자가 되어 사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한줄에 꿴 구슬처럼 한 지붕 아래서 형형색색의 개성을 곱게 안고 하모니 잘 된 합창곡을 부르고 우린이때이백(李白)의 別有天地非人間(속세가 아닌 별천지가 바로 여기로구나)을 어찌 산속에서만 찾으랴하는 커다란 부러움에 싸인다. 공범자가 되지 못한 부부란 행복의 조건에서 우선 탈락된다고 본다.

내詩集이 나올 때마다 출판되기까지의 나의 공범자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후기속에 남기곤한다. 특히 내 첫사랑이자 지주(志柱)인「丑」은 변함없는 공범이다.

주위의 내공범자들을 둘러본다.

그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한쪽이당기면 저항 없이 끌려오고 사랑으로 단단히 묶여져 한쪽이 익사하지 않게 서로서로 바라본다. 가끔 지친 나를 한 잔의 커피로 말없이 달래주고 어느날 주저앉아 좌절의 심연 속으로 깊게 깊게 빠지려는 내가 손짓하면 달려와 한통속이 되어 같이 취해 같이 울어도 주는、우린 떨어져 살아 어떤 땐 해가 바뀌도록 만나지 못한다 해도 같이 아플 줄 알아、바로 내 살붙이인데. 그런데 가변성(可變性)의 불쌍한 우리들은 어쩔수 없이 잔교스런 공범자의 배반을 쓸개즙을 마시듯 겪기도 하나니. 이건 예수를 판 유다의 후예이기도 한 우리의 서글픈 모습이리라.

전화로 상담하는 봉사기관인 생명의 전화에서 그동안 받은 5백여통의 상담을 하면서 내가 꼭 지키려고 마음먹은 건 다름 아닌 공범자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목소리만으로 만나는 피상담자와 다정한 공범자가 되어 함께 분노하고 더불어 슬퍼하며 철저한 모의에 가담했다. 어떤 날 퍼붓는 비속에 나서서 방금 상담한 그 청년이 나와 공범자가 되지 못한 채 가버린 무거운 마음 때문에 가슴속까지 비에 젖어오던 아픈 추억도 있지만 기꺼이 공범자가 되어있었다.「패거리」는 우리공범자들 모임의 이름이다. 한 달에 한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스스로를 확인한다.

한번은 그날의 지도神父님으로 참석한 인천의 扈神父님이『이 패거리라는 명칭과 아주 잘맞는 분이 한분계시군요』하면서 나를 치적이라도 할 듯이 능청을 부려서 좌중을 웃겨 扈

神父는 완벽한 우리「패거리」의 공범자가 되어 당신이 신학생 시절에 쓴 봉헌성가『주여 나의 몸과 맘』을 우린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불렀다.

지난해 가을 우리본당의 고등학생들이「시온제」라는 문학의 밤을 열고 나는 강평하는 입장이었다. 이때 첫 맡은『여러분과 공범자가 되려고 왔읍니다』해서 그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공범자들 속에 이질 분자로 끼인 나를 가상해보라. 직장동료 셋이 자기만 따돌리고 날마다 점심때면 몰려가는 소외감 때문에 울게 된다면 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