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의 상쾌한 아침.
창을 여니 남빛 하늘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바람기 하나 없는 맑은 공기에 마음이 우선 즐겁다. 물을 뿌린 듯 고요하기만한 새벽풍경 - 이 시간이 나는 좋은 것이다.
행선이가 산에 함께 가자기에 집안일도 팽게치고 같이 가기로 했다. 엄마와 동생 기완이는 문현 성당에서 오늘 운동회가 있다며 거기에 간단다.
기완이는 금년에 중학 2학년인데 공부는 제쳐놓고 놀기에만 앞장서는 아이다. 집안에 손님 오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도 수지가 맞는 손님이라야 하고 잡비라도 두둑하게 주는 손님이라야 한다.
공부방에는 아동문고가 몇 질이나 보기 좋게 꽂혀있는데도 먼지가 뽀얗게 앉고 그것도 비슷한 친구 몇이 와서 빌려가고는 돌려줄 생각도 하지 않는데도 찾아올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아까운 줄 모르고 욕심도 없고 앳살도 없는 천하에 어리석고 줏대 없는 아이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아이가 집에 있다 보니 집안은 늘 시끄럽고 엄마나 아빠는 불안하고 안타깝고 초초할 뿐이다.
약속한10시 서면우체국 앞에 당도했더니 행선이는 경분이와 벌써 와있다.
『주야씨 반갑습니다』행선이가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면서 손을 잡고 매달린다. 경분이는 어른스럽게 웃기만 하고 섰는데 마침 오천장행버스가 도착、차에 올랐다.
재활원 앞에서 내려 식물원 쪽으로 걸었다. 오늘은 연휴일 쾌청에다가 오월의 신록은 눈부시게 싱싱하다. 저 꼭 금강원 중턱에는 성냥갑 같은「케불카」가 공중에 매달렸다. 숲속에 희껏희껏 보이는 바위들이 만상을 드러내고 푸른 숲속에 산재한 붉은 지붕의 별장들은 서구의 정서를 담뿍안고 동양의 산수에서 구의정감을 절층이라도 한 듯 색다른 감회를 안겨준다.
山城으로 뻗은 차도.
폭넓은 노송사이로 난 이 길은 언제 걸어도 신선하고 상쾌하고 내 마음을 흐뭇하게만 한다. 숲이 짙어 계곡물이 넘치고 멧새들 소리에도 운치가 있어 좋다.
山城으로 달리는 마이크로도 만원이요 길에도 사람의 행렬이 깔렸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 떨어지는 꽃잎처럼 나비들도 애교롭고 멧새들도 소란한데 꾀꼬리울음소리는 유달리 아름답게 청각을 울린다.
東門에 당도하니 삼복 같은 더위에 어쩌면 산성마루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청량 음료수처럼 시원할까. 길이고 나무그늘이고 물이 있는 곳엔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車씨아저씨 집에 들렸더니 평상이고 마루고 방마다에는 신사숙녀가 진을 치고 모처럼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 보내자니 마음 아프다는 車씨아주머니의 은근한인정미가 우리들을 멀리갈수 없게 묶어 놨다.
근처 소나무 그늘에 자리 잡고 도토리묵에 山城소고기를 청했다. 노리께 하고 구수한 염소고기. 넓적한 돌을 구해 염소고기를 지글지글 굽고 텁텁하고 향긋한 도토리묵에 피곤을 잊고 인생의 의의를 여기에서 찾아본다.
金井山의 連峰이 녹음에 쌓였고 명지평야의 비니루하우스가 정오의 햇살에 강물처럼 일렁이고 비단결 같은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스쳐간다.
다시산길은 계속된다. 五倫臺의 표주박 같은 푸른물결이 높고 낮은 산줄기에 위치하고 부곡동 팥송 등지의 달걀빛 건물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자암으로 빠지자.
十年壽松도 구경하고 밤나무단지에 싸인 양어장도 구경하자. 좌우의 기암들이 너무나 신기하다. 연산동에서 산나물 뜯겠다고 찾아온 30대부인 세 사람도 산채 뜯기는 고사하고 이절경이 처음이라면서 넋을 잃고 서버렸다.
산속에서 만난사람이면 한결 같이 다정하다. 허심탄회-구김살 없고 부담 없는 대화가 오고간다.
행선이가 바위모양이 신기한 듯 비둘기 같은 둥근 눈으로 탄성을 연발 하고 거북이바위가 산꼭대기에 기어오르고 병풍바위 이에는 강인하게 소나무가 한그루 섯다. 하느님의 걸작. 人工의 극치도 따를수 없는 신비로운 자연의 자태에는 놀라움을 금할길 없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