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에서는 둘째누이 대동댁과 넷째누이 배목댁、 그리고 순자의 부르짖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삼촌、 그리고 누님과 숙모님들!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의 행위를 못할 때는 죽어 마땅합니다. 더 이상 악의 씨앗을 뿌리기전에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살려둡니다. 오늘 생명을 건진 것은 꼭 있어야할 두년놈이 없기 때문이니 그렇게들 아시오. 다 되어가는 목숨들 죽여본들 나의 고기값도 못할 것이나…누님과 숙모님들 그 자식들 그 이외의 자식들、 나처럼 만들지 마십시오. 더 이상 원한을 사지 말란 말입니다』
한번 불길이 당겨진 화약은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삽시간에 뇌관의 목덜미에까지 불기운이 미치자 뇌관에 부착된 제라찡을 뽑아 마당으로 던졌다. 순간 나의 몸둥아리에 감은 도화선에 부착된 뇌관이 딱총소리와도 같은 소음과 함께 나의 앞가슴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사경을 헤매던 나는 가슴을 압박해오는 통증을 느끼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점차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주위는 죽은 듯이 고요했고 어두움을 지켜주는 한자루의 촛불만이 희미하게 빛을 뿜고 있었다. 입고 있던 옷가지는 갈갈이 찢어졌고 가슴부위를 둘러 감은 붕대 속에서 선혈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외삼촌 움지이지 마세요. 오늘 참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나는 오늘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 그렇게도 순진하고 다정하던 외삼촌이 오늘의 진통을 겪으려고 묵묵히 지켜온 집념、 그 무서운 집념을 오늘 난 배웠읍니다』
『듣기 싫다. 다 듣기 싫어. 다 듣기 싫단 말이다. 술이 먹고 싶다. 술을 좀 다오』
『외삼촌 몸이 편치 않으신데 술을…』
『괜찮아 걱정을랑 말고 술 좀 다오』
『잠깐만 기다리세요. 곧 술상 봐올께요』
잠시 후에 그녀는 술상을 차려왔다. 술을 따라 입술에 대어주며 어미가 자식을 타이르듯 은근히 타이르기 시작했다.
『술 드시고 한잠 푹 주무세요. 마음이 괴로울 때면 한잠씩 주무시고나면 한결 가벼워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큰 삼촌과 외숙모님도 용서하세요. 외삼촌이 저에게 주신 십자가 목걸이、 그 십자가는 정의와 평화를 상징하는 것 아니겟어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재현될지라도 참고 웃는 것입니다. 저 유명한 카네기의 명언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웃기 싫은 웃음이라도 자꾸만 웃다보면 참 미소가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옛날 우리가 소꿉놀이 할 때처럼 한번 웃어 보세요』
『고맙다. 우린 삼촌이고 조카이기 전에 어린시절 소꿉친구였지. 그땐 많이 웃었다. 하지만 이제 난 그때의 그 웃음마저도 잃어버렸으니…난 미친놈이 될 수가 없어. 내 생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난기어이 1백83일의 빚을 갚고 말것이다』
난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른다. 나의 두 눈은 싯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고 찌들어진 양미간은 충혈이 되다 못해 설익은 바나나 껍질처럼 퇴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
나의 활동영역은 마산을 기점으로 하여 서부경남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상품도 다양해졌다. 지방의 일선영업사원들을 포섭하고 상품들을 조달하며 나의 일과는 더욱 분주하게 되었다. 시내의 강남극장을 지나치는 길목에서 이석을 만났다. 그는 태권도 4단의 유단자로서 둘도 없는 죽마지우였다.
『요즈음은 경기가 어떤가? 』
『응、 그런대로. 이젠 약간의 재정도 축적이 되로 있긴 하지만 공간을 초월하여 나를 엄습하는 심령의 고통들은…이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여인들을 주시할 때마다 난 야릇한 쾌감까지 느끼거든』
『이것봐、 창권. 지금의 그 말이 진정이라면 자넨 그 여인들보다 더욱 무서운 악마로군. 그런데 넌 그 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저 유명한 독일의 악성 베에토벤의 최후의 명언 있지 않은가? 인생은 연극이라고 한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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