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아침나절의 기온이 한결 서늘해지고 한낮의 하늘은 소닿을 길없는 높이로 멀어져갔으며 햇살은 적요하기 그지없다. 앞마당에선 개나리며 목련잎사귀가 첨예한 감수성으로 누렇게 변색된다.
이무렵이면 너나없이 모두 마음조차 소슬해진다.
씨를 뿌려놓았던 사람은 수확을、집없는 사람은 월동할 집마련에 골몰하고 친지끼리는 소식을 전하며 홀로있는이는 여행을 꿈꾼다. 간이역 언저리에서 한들거리며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향수처럼 그리워지는 철이다.
며칠전에 집안의 혼사일로 아내와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엘 다녀왔었다. 서울거리와 골목의 아스팔트 길만을 왕래하던 시야에 새삼 가을이 한아름으로 들어왔다.
자연은 보다정직하고 숙엄하다는것을、한결같이「때」를 알고 우주의 섭리를 다소곳이 받아들일줄 안다는걸 이해하게 된다. 차창밖으로 스치는 마을들이며 거기 담긴 인사 (人事)도 이렇게 보면 한낱자연의 일부로만 보여지기도한다.
차가 양산군으로 접어들었는지 길가에「통도사」입간판이 보이고 얼마쯤 더 가서였다. 우측야산의 산비탈에 첫주교공원묘소가 원경으로 바라보였다. 작년에 장인어른이 여기 묻힌 연으로 나는 이곳을 두번이나 왔었던터라 낯익은 풍경이기도했다. 옆에서 아내가 그쪽을 가리키며『그동안에 묘가 많이 늘었어요、저기까지 차올라갔네요』한다. 공원묘지로 구획정리한후 아래에서부터 묘를 쓰고있었는데 과연 얼핏본 눈짐작으로도 봉분의 열이 위쪽으로 성큼 올라가 있었다.
우리들이 죽음에 무관심하며 살아온 이 짧은 시간동안 많은사람이 죽어갔구나 싶었다. 죽음을 목전에두고 한발짝 한발짝 다가서면서도 사람들은 순간의 이해 (利害)에만 급급해하며 자기는 영생하기나한듯 죽음을 상념해보지않는다. 그런사람은 一回的 삶의 의미에 대한 인식이 없어 영원한 죽음조차 두려워할줄 모르게 된다.
60년대에본 영화장면에서『사람은 시간과 죽음의 한계속에서도 일하고 노래하고 창조한다』라는 대사를 접하고 감명을 받은적이 있었다. 액면 그대로는 인간의 위대성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긍정적으로 갈파한 말이지만 그속에는 화자 (話者)가 시간과 죽음의 자각을 바탕으로하고 있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졌었다.
이처럼 현세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사람에겐 아마도 영원한 생명을 희구하고 거기에 이르려는 의지가 싹트게 되리라.
많은사람들이 영생에의 의지를갖게된다면「神曲」<지옥편>의 다음과 같은 귀절『끝없는줄을 이어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었다. /죽음이 그처럼 많은 사람을 망쳤다고는/도무지 믿어지지않았다』와 같은 운명을 벗어날게 아닌가.
가을이다. 가을은 뭔가 더심층적인 것에로 우리의관심을 이끈다. 도처에서 우리는 사멸하는것들의 정적과 허무를 느낄수있고 어느때보다 죽음의소리를 귀가까이 들을수가있다. 그래서 우리는 一回的삶을 불현듯 깨달으며 이짧고 귀한세월속에서 무엇으로 이삶을채우고 무엇을 예비하며 살것인가를 궁리하게된다. 오늘 거둬들일 수확보다는 더큰수확을、당장 들어설 집보다는 영원히 살집을짓는데 생각을 기울여보게도 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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