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고향이 있어 1년에 한 두번은 다녀오곤 하는 처지를 나는 늘 고맙게 생각한다. 그곳에는 지금도 부모님과 많은 친지들이 살고있고, 나를 성장시켜준 산과들과 시냇물을 만나게되며 무엇보다도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기때문에 고향을 찾는 마음은 늘 반갑고 따스하기만 한다.
누구에겐 고향이 없으랴만, 그 고향에 갈수가 없다거나 송두리째 변해버린 도시의 일각이어서「고향」이 환기시켜주는 정감을 맛볼수 없는 사람에 비한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랴.
하지만 내 생의 뿌리가 뻗쳐있는 고향이 그 정적과 詩情과 추억의 풍경화대로 있어주지 않기에 일말의 슬픔을 얻는다. 우리 생의 상실중에서 뿌리를 잃어가는 상실만큼 더큰 충격이 있을것 같지않다.
내 고향은 영남 산간벽지의 한 소음이다. 유년시절만해도 그런대로 향토색이 감도는 은은한 정취를 풍겼는데 지금은 어정쩡한 중소도시로 변하고 말았다. 사회 변천의 당연한 추세로 봐준다하더라도 30년만에 이처럼 달라진다면 앞으로 남은 내 생애에서 그 편린이나마 찾아볼수 있을까 하는 공포감을 떨칠길 없다.
이 두려움은 다음과 같은 것에서 연유된다. 우선 초가지붕과 솔가리 타는 냄새를 잃어버렸다. 해저물녁에 마을을 감싸며 피어오르던 연기는 거기에 사람이 살고있음과 인정과 단란이 도사리고 있음에 다름아니었다. 지붕위에는 박이 여물고 빨간 고추가 널려있어 생활의 재미를 암시해 주기도했다.
또 내어릴적만해도 수천년 선조대대로 내려오던 겨레의 풍속이 많이 남아있었다. 부녀자의 그네타기 널뛰기 남정네의 윷놀이 연날리기가 철따라 명절따라 성행되어왔다. 단오날의 그네타기 경연은 읍내의 축제였던게 지금도 뇌리에 생생한데 이런 세시풍속이 어쩌면 삽시에 사라져 가버릴까. 애석하고 서글픈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더 심각한 사정은 이러한 사회현상에 있지아니하고、자연의 변화와 파괴에서 더욱 실감케된다.
인체의 정맥처럼 얼설키며 흐르는 마을의 개울이 말라가고있다. 옛날엔, 집앞을 흐르는 도랑물은 맑고 거기에 메기 붕어 미꾸라지 따위를 잡았던곳에 지금은 물도 고기도 없어지고 질컥질컥 썩은 하수구물이 고여있을 따름이다.
들에도 마찬가지로 수로마나 웅덩이마다 풀섶 아래에는 으례 지느러미를 헤짓고있던 어류는 내 고향뿐만 아니라 전국토에서 씨를 말려가고있어、이젠 자연적생식은 바랄수가 없게되었다. 농약때문이라한다.
인간 생존이 이토록 엄청난 보상을 강요하는가 하는 각성과 함께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각종의멸종을 숙연하게 생각해본다 그중에서도 호주(濠洲)에서 있었던 사실은 교훈을 삼기에 족하다. 식민정책에 의해 호주로 이민해 온 백인들이 원주민과의 접촉을 통해 그들이 성병을 퍼뜨린 결과로 저항력이 약한 한 원주민 종족이 멸종되어버린 역사는 오래토록 인류의 양심에 기억되어야 할 일이다.
이 사례를 남의나라 일이라고 피안의 불보듯 할수 있을까. 우리의 고향엔 이상이 없는가. 아직도 고향의 가을 햇살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나는 가을이면 고향을 찾게되는가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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