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 .
인간고독을 이겨내신 고(故) 한 필립보 신부님을 추모하며 고인에 대한 추억에 잠긴다.
그 거룩하신 님의 영령은 지금껏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그분의 지극한 애덕심과 불타는 의분(義憤)에 찬 호통소리, 그분과의 마지막 이별도 벌써 3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원한의 남북을 가르는 임진강, 이는 언제와도 망향객의 비분과 회포를 설레이게한다.
그 임진강 너머 먼 송악산을 눈앞에, 또 그 뒤를 따라 멀리 서북하늘을 치솟은 수양영봉(首陽靈峯)이 오늘따라 더한층 걷잡을 수 없는 향수에 잠기게한다.
아울러 고향본당에서의 어린시절과 너무나 외롭게 가신 고(故)韓 신부님의 추억이 주마등과도 같이 뇌리를 스쳐간다.
자그마한 체구에 야무지신 호통소리、그분의 비장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고 그목소리는 아직도 붉은무리 적마(赤魔)들 틈을 타서 먼길을 혼자서 연길교구를 떠나셨던것이 어느날인지는 확실치않으나 그분을 맞이하러 사리원 본당으로 숨어간 것이 아마도 1946년、7년경이었다고 짐작된다.
김목대리 박 바오로 신부님의 친절로 기다린지 며칠만에 그분은 도착하셨고 감격과 비통이 뒤섞인 악수와 포옹만이 그토록 기다렸다던 그분께 대한 환영식의 전부였다.
거기에서 다시 발길을 남쪽으로 옮겨 고향본당(해주)에 도착하니 그분을 맞이한 사람은 김 아우구스띠노 노인과 몇명의 교우들뿐이었다. 모두들 월남했고 성당은 텅비었고 사제관은 흐트러져 있었다.
부임하신지 몇칠뒤 나는 또다시(2번째) 남쪽으로 갔다. 나의 신덕이 좀더 강했더라면 그날의 이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영세한지 불과 1ㆍ2년밖에 안되는 내가 韓 신부님을 몇달만 피하시라고 괴롭혔으니 상상 현성용을 보고 졸라댄 베드로 사도를 닮았던 것이리라.
『스테파노, 어디를 가자는가』
『스테파노、본당 신자들이 모두 그렇다면 기라、나는 안간다. 남은 양들을 그대로 버리고 날더러 도망치란 말인가』『아닙니다. 신부님. 좀더 현실을 지혜롭게 관찰하셔야지요 잠시 몇달 피하셨다가 기회를 노려 좀더 많은 양들을 키워야 하시지 않겠읍니까』『그런 지혜 나는 모른다. 목자가 잠시라도 생명을 아끼면 양들은 죽는다. 갈테면 어서 혼자 가란말이다』
몇말씀을 뼈아프게 뒤로 새기며 나혼자 떠나온 그날의 비통、괴롭고 외로왔던 작별.
몇달 뒤에서야 뒤따라온 여회장(가톨릭청년회 여회장、지금은 그의 성본명조차 잊었음)에 의해 이미 韓 신부님은 순교하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추측대로 그분은 장한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셨으나 그가 이승을 떠나 가시는 그때 그누가 애도의 뜻인들 보냈으랴. 궁금할뿐 그 뒷소식은 지금까지 알길이없다.
한창 일하실 젊은나이에 이슬처럼 사라지신 님이여 나는 어째서 눈ㆍ귀막고 오늘을 헤매이는 것일까.
한국시성시복운동에 참고가 된다면 후일 님을 만나 변명할 말이라도있으련만 … .
자유의 다리 임진각 누상에서.
※韓 신부님의 뒷소식을 아시는 신자분의 연락을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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