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에로스를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랑」이라는 낱말의 남용 속에「사랑」은 없고 에로스의 향기에 대한 추억마저도 잃어버렸다. 우리는 모든 것이 무익하다고 느끼고 무감각과 무관심의 고갈한 지대에 자기를 맡기고 있음을 본다.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황홀하던 시대가 있었다. 기사(騎士)는 감옥에 갇힌 연인을 구하기 위하여 생명을 무릅쓰고 왕에 감히 도전하던 낭만주의 시대도 있었다. 신사는 사랑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격투로서 죽음을 선택하던 신사도의 시대도 있었다. 그 땐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참다운 인간의 삶의 모습은 사랑을 상징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진실을 믿고 있었다.
용기와 힘을 주는 사랑은 생명의 근원이다. 사랑을 하는 이에게 새소리는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고 주위의 친구는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흙탕물의 다뉴브강도 사랑을 하는 이에겐 푸르게 보이는 까닭은 사랑이 지니는 신비한 마법이라 하겠다.
사랑을 하는 이의 눈동자는 동경으로 빛나고 영감으로 충만하여 영원을 내다보는 불멸에 가까운 영혼을 지닌다.
시인에게 있어 시의영감인 에로스、자고로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에로스를 찬양했던가! 플라톤의 에로스도『우리를 시인이 되게 하고 발명가가 되게 하는』가하면 지식을 동경하게 하고 진실과 결합하는 힘이었다. 『우리를 신으로 향하게 하고 종교적 경험 속에서 신과의 신비한 결합에 대한 동경』은 성 오거스틴의 에로스였다.
우리를 현명하게 하고 우리의 영혼 속에 사고와 감각을 싹트게 하는 장소를 마련하는 에로스는 우리를 고상하고도 선한인생으로 만드는 덕(德)을 찾도록 열망케 한다
그런데 그 에로스는 지금 어디로 가버렸는가? 사람들은 에로스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유형 보내고 자기가 쌓은 성(城)속에 들어 앉아 바깥세상을 내다보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사람들은 상처받고 돌아오는 것을 미리 두려워하며 무감각의 지대로 자기 유배를 한다. 그것은 불안에 대한 자기방어다. 『그의 마지막 선상의 방어는 위험에 대한 느낌에서의 도피다』라고 톨로메이는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무감각과 무관심의 인간소외현상을 현대문명에 다 그 원인을 둔다. WㆍHㆍ오우던도 현대를『불안의 시대』라고 불렀는가하면『공포의 세기』라고 까뮈는 이름 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레슬리 화비는『병든 의지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렇다. 불안과 공포에서 병든 의지로 전락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의 상황이다. 이 상황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며 받아들이는 숙명이 있을 따름이다.
상처받고 돌아온다 해도 사랑은 인간의 사랑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순간에서 영원을 잡고 다시 깊은 절망에 빠진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상황의 조건이다. 모든 인간들과 우주에서 동떨어져 신 앞에 혼자서 있는 인간은『신 앞에서 결정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키엘케골)자기를 철저히 사랑해 보지 않고 남을 사랑할 수 있었던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기고유의 사랑은 자기만을 철저한 에로스의 세계다. 따라서 에로스는 사랑의 숙명의 한 요소를 지닌다. 우리는 원탁의기사가 성배(聖杯)를 찾으려가는 그런 용기와 덕으로 에로스를 찾으러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성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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