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추운 목을 움추리고 바삐 귀가하는 해그름의 길모퉁이에서 한 노인이 수레에 실은 귤을 팔고 있다. 귤 봉지를 진귀한 보물처럼 가슴에다 안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행복하게 보인다. 그들이 안고 가는 것은 귤이 아니라 아마 꿈 이었을 게다
이름도 모르는 어느 나라에 꿈을 파는 동리가 있어 한 노인이 꿈을 찍은 그림엽서를 수레에 실어 팔고 있었다.
사람들은 노인의 수레위에서 꿈을 골라 돈을 주고 사가지고 갔다. 그림엽서의 이야기는 곧 자기의 꿈이 되는 것 이었다.
「꿈을 파는 동리」에 사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재의 삶을 미래의 꿈 위에 세운 희한한 풍습의 우주인들이었다.
영화 속의 귤을 파는 노인의 영상이 길거리에서 귤을 파는 노인의 얼굴 위에 겹친다 꿈을 돈으로 살수만 있다면 그러나 이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꿈은 황금과는 가장거리가 먼 어떤 장소에서 가장 순수하고도 귀한 베일 속에 쌓여 표상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숨어있다. 마치 겨울날 개울물이 흐르는 산골짜기에이는 안개 속에 형체가 분명치 않는 그 어떤 모습으로 있는 것처럼 꿈은 실상 걷잡을 수도 없지만 또 놓칠 수도 없는 그런 모순은 숙명으로 언제나 우리의 삶과 함께 있다.
초겨울의 차운 공기가 야릇한 연기 내음을 풍긴다. 그 연기 내음은 언제나 한해가 거의 다가버릴 무렵에 낯익은 변화로 오는 감각이다.
우리의 소망이 불투명한 자욱 만을 남기고 지금쯤 그 자욱 마저도 낙엽처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허무감. 또 기어코 손에 잡히고만 것은 결국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공허감이 좀처럼 자기를 용서하기가 힘들다는 그런 느낌이다.
문득 어린 날이 그림엽서처럼 곱게 떠오른다. 어린 날에 맡던 향긋한 비누 냄새、초가지붕에 걸려 있던 한줄기 연기, 어느 날 저녁 아버지에게서 듣던 꾸지람 그 꾸지람이 무엇 이었던가 지금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땐 매우 속이 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잠을 잘 때도 걱정이 되어 옆에 두고 자던 작은 향나무 상자 그 상자는 어린 날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었다. 나는 아직도 작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지금 그 상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내 앞에 다가서는 노인의 그 흰 머리카락、노인은 그의 인생의 마지막 길목에서 낭만을 태우고 있다.
『노인은 램프를 끄고 마루바닥에 누웠다. 바다소금과 모래가 묻은 유목(流木)의 표면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두 눈은 타는 유목의 불꽃의 선위에 놓이고 그 선을 바라 볼 수가 있었다. 그 불꽃은 노인을 슬프게 또 행복하게 했다. <헤밍웨이 奔流속의 >』
그 노인이 나에게『내가 그의 꿈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묻는다면 나는 그를 이해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이해는 이미 수락을 뜻하지 않는가!
나는 결코 그의 낭만을 장식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꿈을 사줄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은 이렇게 말 하리『너는 너를 사랑하는 아무도 결코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라고. 아니 나는 그 노인의 마지막 말을 이미 듣고 있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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