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會一致는 그리스도의 念願이며 聖三一致의 標徵이며 聖父께서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사랑하 계심을 證明하는 保證이기 때문에(요한17ㆍ23참조)그리스도를 믿는 實情은 그리스도를 證據하는 福音化에 障碍가 되고 있으므로 福音에 귀를 기울리는 信者라면 再 一致를 위하여 關心을 갖게되는 것이 當然한 일일것이다. 特히「오늘의 세계 여러지역에서 성신의 은총으로 감도를 받아 기도와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일치의 완성을 도모하는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일치교령4조) 가톨릭側에서도 갈라져간 형제들의 노력을 경멸하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도 함께 協助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깨우치는 時代의 標徵으로 깨우친 나머지 二次바티깐 公議會에서는 一致에關한 敎令까지 發表하고 그후로도 계속 敎書와 訓示를 내림으로써 一致운동을 격려하고 있는바 今年에도 敎會一致週間을 보람있게 지낼 것을 당부하고 있다.
一致運動의 精神과 指針에 대해서는 公議會의 憲章이나 敎令에서 充分히 밝혀졌으므로 本論에서는 몇가지 要點만을 간략하게 考察해 보고자한다.
첫째로 가톨릭측에서 眞理를 사랑하는 姿勢가 갖추어져 있는가하는 문제가 反省거리라고 생각한다. 갈라져나간 兄弟들을 正統的인 敎會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性急한 行動에 앞선 저들이 聖神의 은혜를 받고 있으며 참된 그리스도교적 보화(寶貨)를 共同遺産으로 이어받고 있음을 기쁜마음으로 인정하고 저들을 兄弟로 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일치교령 4조)
둘째로、公議會가 갈라져 나간 兄弟들과 一致의 은총을 함께 請願하기 위하여 合同기도까지 바칠것을 권장하였음을 잘 알고있는 한국가톨릭이 公議會와 敎皇님의 뜻에 따라서 實踐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개신교 信者들과 合同기도를 바칠 수 없는 理由가 있는지 아니면 저들을 그리스도의 한교회에 屬하는 兄弟들(교회의 교의헌장 8조)로 인정하지 못하는 그릇된 思考方式 때문인지 硏究를 해본적이 있는가? 或時 公議會의 主張과는 달리 分裂의 탓을 相對方에게만 전가하는 僞善者와 같은 立場에서 悔改하는 精神이(일치교령7조) 不足하지나 않은지 自問해야만 하지 않을까?
셋째로、公議會는 갈라져나간 兄弟들과의 敎理討論이나 神學上의 爭議를 保留하고 社會福祉運動을 함께하는 自然스런 相逢과 對話를 권장하고있다.
現代의 특성은 사회발전을 위한 萬人의 協同과 共同作業이라고 할 수 있는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한층 더 현대의 요청에 留意해야한다. 그리스도 信者들이 어떤 社會的課業을 成就하기 위하여 모인 協同은 자신들의 內的一致를 보다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 같은 實際的一致를 중요시한 公議會는「그리스도교 정신으로 학문과 기술을 진보시키기 위해서 혹은 饑餓와 災難 文盲과 貧困 住宅難이나 富의 불공평한 分配와 같은 현대의 온갖 社會悤에 대한 갖가지 구제책을 마련해야한다」고 했다.(일치교령12조) 社會福祉운동을 통한 일치운동이 부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1970년「로마」에서는 信協을 통한 汎宗敎人間發展 委員會(E.W.G.EcumenicalWorKing Group)가 발족됐다.
信協이 우리나라에서도 비단 경제문제의 해결뿐 아니고 責任感과 協動精神의 배양으로써 民主主義와 社會發展의 基礎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事實이지만 이 運動을 통하여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自然스러운 相通과 對話의「마당」이 마련되고 있음은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교회의 指導層에서는 敎會內의 운영에 급급하고 여러가지 事情이 많기 때문인지 以上에서 제시된 公議會의 指示에 따르는 實踐이 不足할 뿐만 아니라 計劃조차 발표하지 않고있는 實情이므로 하느님의 도우심이 더욱 요청된다고 보겠다.
한국의 敎會一致運動이 미약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더욱 根本的인 理由는 敎會內의 一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집안의 兄弟들 사이에 一致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갈라져나간 兄弟들 사이에 一致를 이룰수 있겠는가?
가톨릭이 制度的으로는 하나를 이루고 있으나 一般的으로 보아 敎友들간에 그리고 都會地와 地方、本堂과 本堂、敎區와 敎區간의 制度를 초월한 兄弟愛的 一致는 너무나 不足하다고 봐야만하지 않을까?그증거로서 그들사이에 貧富의 差異d가 至大한데도 不拘하고 따뜻한 손길이 交換되지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實情에서 敎會一致는 形式이나 理論으로 밖에는 主唱될 수 없을 것이다. 一致는 하느님과의 사랑과 兄弟愛의 結實이기 때문이다.
兄弟愛가 결여된 상황에서 福音宣布라는 하늘나라의 成長은 不進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敎會는 聖靈이 감도하시기 때문에 樂觀的이다. 公議會를 밝혀주신 聖靈의 감도를 받은 信者들이 분열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반성하고 一致의 恩惠를 간청하는 기도가 一致過間을 넘어서까지 영구적으로 바쳐지 는가운데 새로운 계획과 활동이 請究되어야만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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