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양 진영으로 갈라서서 총칼을 들이대고 얼음장같이 살벌한 긴장 속에서 대치했던 과거 냉전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그 냉전의 잔해가 가장 첨예하게 농축돼 있던 유일한 분단국 한반도에서도 이제 조금씩 불어온 훈풍이 편견과 증오의 얼음산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비록 통일을 향한 발걸음은 여전히 먼길을 남겨두고 있지만 우리 모든 국민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민족의 화해를 기원하고 있다.
8월 15일은 한민족이 일제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된 기쁨과 은총의 날이다. 이날은 또 불행하게도 남의 손에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날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55년은 이전의 식민지 시대보다 더 길고 더 깊은 슬픔의 세월이다. 아울러 이 날은 바로 한국교회 수호자이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이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한 성모승천대축일이기도 하다.
한국교회는 1838년 조선 교구장의 청원에 이어 1841년 교황의 뜻에 따라 성모님을 성요셉과 함께 한구교회의 수호자로 모시게 됐다. 한국교회는 성모님과 맺은 인연이 각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성모님을 사랑하는 깊은 애정과 신심 또한 각별하다. 우리는 이번 광복절,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아 한국과 한국교회를 성모님께 봉헌하는 예식을 전국의 각 본당에서 거행된다.
두 쪽으로 나뉘어 영구히 갈라설 것으로 보였던 세계는 더 이상 인간 자신의 힘으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서로에게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분열과 증오는 하느님의 어머니인 인자하신 성모 마리아의 간절한 기도와 사랑을 통해 치유됐고 냉전체제는 종식됐다.
이에 냉전의 상처를 여전히 가슴 깊숙이 안고 있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다시 한 번 조국을 성모님 품안에 안겨드려야 할 것이다.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 제물로 기꺼이 바치심으로써 죄에 빠진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참여하신 성모님.
그분은 오늘날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숱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사랑을 회복하도록 이끄실 것임을 믿는다. 우리들의 가장 강력한 힘은 기도이다. 이제 우리는 기도를 통해 남북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고 성모님께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과 북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기심, 반생명적인 행위와 사고방식, 갈수록 극심해지는 빈부격차, 여전히 남아잇는 지역 갈등, 황금만능주의 등 하느님과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모든 형태의 생각과 습관들을 벌리 수 있도록 간구하자. 그럴 때에만 새 천년에 맞는 광복절의 참의미가 되살아날 것이며 영광스럽게 승천하신 성모님의 사랑이 이 땅에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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