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경의선 복구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실향민은 『철도가 이어지면 고향의 아버지 묘소를 찾아 제사부터 지내겠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8·15 방문단으로 남과 북을 오고간 이땅의 이산가족이 꿈에도 그리던 가족을 만나 감격어린 포옹으로 울부짖는 모습들이 또한번 전세계로 타전되며 지구촌의 눈길이 한반도에 모아졌다.
나는 이번 8·15때 대한적십자사를 대표하여 공식적으로 북한 방문단을 맞이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꿈에도 그리던 만남
지난 85년 9월 첫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 때의 눈물바다가 재현되는 것을 보며 또한번의 아쉬움을 우리는 맛보아야만 했다.
그때와는 다른 만남이었고 남과 북의 상봉 장면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져 다음의 기대로 설레이게 한 밝은 모습도 적지 않았다. 서울과 평양을 남과 북의 비행기로 갈아타고 오고간 모습도 그만큼 정겨워 보여 좋았다. 남과 북을 가로막는 철책의 한부분이 걷히고 거기에 남과 북을 잇는 길 하나가 놓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육로를 두고 하늘 길로 오고간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육로를 이용했더라면 고향산천도 스칠 수 있건만 그것이 허용되질 않았다.
그리고 고향을 찾아 부모의 묘소에 성묘하고 술 한잔 올리지 못한 것도 끝내 한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 고향땅 밟고 싶은 소원마저 들어주지 못한 이산의 상봉 뒤에 안쓰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천만 이산가족들의 꿈은 그리던 고향 마을을 찾아가 보고, 고향집에서 하루밤이라도 함께 자보는 것이며 마을 뒷산 조상 묘소에 술한잔 올리는 것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올 가을 경의선 철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내년 가을이면 남쪽의 문산 장단간 12㎞와 북측의 장단, 봉동간 8㎞의 철로가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실로 한민족의 대역사가 아닐 수 없다.
경의선에 이어 다시 서울 원산간 경원선이 이어지고 금강산선 철도가 이어지면 민족의 대동맥인 남북 종단 철도가 옛모습을 되찾게 된다. 실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반세기동안 섬아닌 섬으로 고립되었던 우리 앞에 대륙으로 뻗어가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지금은 꿈이요 공상일 수 있지만 우리 앞에 철조망이 걷히고 분단의 장벽이 민족화해의 길로 이어진다면 그런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경의선과 연결된 북측의 평양-개성간 평부선, 그리고 평양과 나진간의 평라선을 거쳐 대룩으로 이어지는 길, 두만강 하구에서 가까우 나진에서 기차로 두세 시간을 달리면 러시아의 연해주 항구도시 나훗카에 닿는다.
진정한 이땅의 주인
여기서 로시야(Rossiya)라는 특급열차로 갈아타면 그때부터 1만㎞에 달하는 대장정의 시작이다. 끝없는 초원과 삼림, 광대한 바이칼호수, 기차가 울란우데이에 다다르면 전세계 담수량의 1/5을 차지하는 거대한 호수 바이칼의 웅지를 보게될 것이다.
바이칼 생선 오물리 튀김에 보드카 한잔, 다시 끊없이 펼쳐지는 타이가, 그리고 자작나무 숲…. 시베리아의 장엄한 서사시에 몰입돼 여드레를 지내가보면 이윽고 종착지 모스크바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철도는 다시 사통오달 유럽의 구석구석으로 이어질 것이다. 생각만해도 가슴벅찬 감동이 온몸을 휘감는 듯하다.
주미특파원 시절 사무실 벽의 세계지도를 바라보며 나는 파리에서 육로로 서울까지 가는 길을 그려보곤 했다. 자동차, 열차로 마음껏 나라 밖을 오가는 유럽인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한국은 땅길로 갈 수 없는 섬이 아니다. 남북한 간에 철길이 뚫리고 초고속 철도가 놓이면 우리도 유럽까지 이틀에 주파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이번 8·15 광복 55주년을 맞으며 나는 남북이 하나가 되어 통일이 되는 날을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그리고 이땅에 더 이상 실향민이라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8·15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남북이 화해하는 마당에 국경이 따로 있을 일이 무엇인가? 하루 빨리 경의선이 복구되고 경원선, 금강산선이 복구되어 38이라는 이름의 국경을 지우고 철조망을 거두고 또 동서 155마일 3억평, 휴전선에 묻혀있는 100만개 이상의 지뢰를 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1000만 이산사족들도 실향민에서 해방된 진정한 이땅의 국민이 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기차를 타고 북녘땅을 달려 고향을 찾아가는 꿈을 꾼다. 그날 나도 시인 묵객처럼 비로봉 명경대 만폭동 금강산 곳곳의 절경을 마음껏 찬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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