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끝임 없는 만남의 연속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노래한 시인도 나그네의 여정 속에 만나야하는 미지의 세계를 삶의 동력으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개개인의 인생행로가 각기 그 의미를 갖는 것은 각자의 나그네길이 모두 다르고 따라서 만남의 대상이 동일하지 않은데 있다. 만남의 대상은 너무도 넓다. 나 이외의 모든 삼라만상이 만남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과 풍물, 사상과 철학, 지식과 종교를 만나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과 시대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만남의 중심에 사람과의 만남이 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은 물론 엄마다. 엄마 품속의 따스함을 벗어나면서 한사람 또 한사람 낯선 사람을 만나가면서 생활을 영위한다. 가족, 친구, 선생님, 동료들과의 만남으로 생활의 범주가 넓어진다. 일생을 살아가며 족은 사람과의 만남이 있는가 하면 악연에 의한 만남도 있고, 그 만남이 영원한 만남이 될 수도 있지만 짧은 만남으로 그칠 수도 있다.
만남 중에 가장 의미 있는 만남은 「다시 만남」즉 재회라고 생각한다. 십여년 전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느끼는 기쁨이 크고 빛 바랜 사진첩의 추억을 되씹으면서 다시 만나보는 학창시절이 더욱 아름답다. 외국의 명소를 찾으면 종종 「당신은 이곳을 일생 꼭 한번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표지판의 글을 볼 수 있다. 나일강 물을 마신 사람은 반드시 나일강을 다시 찾게 된다고 한다. 로마의 트레비 샘도 일본의 후지산도 같은 전설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해 현지인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기보다는 그 곳의 매력에 흠뻑 빠져 다시 오고 싶은 방문객의 바람이 긔렇게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하물며 헤어졌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은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서로 보기 싫어서 등을 돌리고 헤어졌던 사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반세기의 긴 시간동안 헤어져야만 했던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런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8.15 광복절을 맞아 남북 200명의 이신가족이 꿈에도 그리던 부모, 형제, 자매를 만나기 위해 서울과 평양을 상호 방문했다. 불신과 반목을 조장했던 이데올로기와 패권의 논리가 우리를 민족분단의 아픔 속에 몰아 넣은 지 어언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만남이 단절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려온 이산가족들은 재회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재회는 눈물로 시작한다. 그것이 기쁨의 눈물이건 슬픔의 눈물이건 상관없다. 히난 나올 때 함께 모시고 오지 못한 통한의 눈물일 수도 있겠고, 거칠은 피부의 고생한 흔적을 보고 안타까움에 흘린 눈물일 수 있다. 보고 싶었던 마음을 전하고 가족의 안부도 물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아픈 과거를 씻어주는 눈물이며 동시에 기쁨을 잉태하는 눈물이다. 민족의 큰 시련을 이겨내고 기쁨의 재회가 시작되는 올 2000년이 교회의 대희년이라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다. 새 천년 대희년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산가족의 대회를 바라보면서 진정한 만남의 체험은 그것이 어떠한 연유로 분열과 단절과 헤어짐이 있었더라도 결국 재회이 기쁨을 맞게됨을 확신하게 된다. 이산가족의 재회는 결국 민족통합과 통일로 발전될 것이다. 아무리 혹독한 시련이 있더라도, 혹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마지막 민족재회, 민족통일의 모습은 확신할 수 있다. 會者定離가 아닌 離者正會의 진리를 믿게 되었다.
대희년 성모성천대축일을 맞아 재회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것을 반추해보고 싶다. 만났을 당시 절실하고 귀중했던 상대들이 지금은 나와 어떠한 관계 속에 있는지 되돌아보면서 스스로의 우쭐함과 자만, 경솔함으로 많은 것들과 소원해져있음을 반성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진정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구별해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 중요한 것을 멀리한 채 외로움에 젖어들고 있다. 자연과의 재회, 하느님과의 재회, 이세상 모든 진실한 것들과의 진정한 재회가 절실하다. 이산가족의 상봉을 보면서 그동안 나로부터 멀어져간 상대를 찾아 재회의 기끔을 나누련다. 틀림없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첫 만남의 기쁨보다 재회의 기쁨이 훨씬 크다는 믿음으로, 무관심으로 멀어졌던 지인들을 찾아 그간의 생활을 나누련다. 바쁘다는 핑계로 등한히 했던 신앙생활을 새롭게하기 위해 조용히 피정을 다녀오면 하느님과의 재회가 더욱 풍성해질 것 같다.
지금까지 집필해주신 김수희, 이기상, 안경렬 신부, 박완서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이정희, 박노헌 신부, 김현준 신부, 김광원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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