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학생들과 교수의 자살 사태를 바라보면서 많은 이들이 마음 아파했다. 과학영재를 꿈꾸며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꿈을 펼치고자 했던 이들의 죽음이었기에 그 반향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에 대한 질문에 차등 수업료제와 영어로만 진행되는 강의 등 서남표식 교육정책의 실책이라고 대답하기도 하였다. 가톨릭 신자로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며 또 어떠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타인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가톨릭교회는 언제나 자살을 비윤리적인 행위로서 거부해 왔다. 생명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간 각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삶과 죽음에 관한 권한은 오직 하느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살은 하느님께 속한 생명을 내 마음대로 침해하는 행위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생명의 복음」(1995) 제66항에서 자살의 가장 깊은 실재가 생명과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거부라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자살은 하느님의 절대권에 대한 침해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기 사랑의 거부이며, 생본 본능의 부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자살이 언뜻 보기에 한 개인의 기질이나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환경과 직접적이고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2010년 11월 2일 일본 카리타스 계발부회(啓發部會)가 발표한 “자사(自死)의 현실을 바라보며”라는 문헌에서 우리는 사회적 정신적 상태의 반향으로서 자살에 대한 깊은 사목적 성찰을 발견한다. ‘자살=자신을 죽임’이라는 말에 당사자를 책망하는 것 같은 어감이 있어, 보다 중립적인 단어인 ‘자사’가 더 낫다고 판단한 문헌은 자사자(自死者)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기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린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자살 문제에 대한 많은 전문가들은 자살의 배경에 반드시 ‘고립’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곧 한 사람이 자살하는 근본적 이유에는 ‘그 누구와도 교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 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죽고 싶다’는 호소의 근저에는 ‘살고 싶다’는 외침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회적 환경이 카이스트의 학생 및 교수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무엇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무한경쟁과 더불어 내 이웃이나 친구를 이겨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꼽을 수 있다. 사실 경쟁은 항상 부정적 의미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계발하고 성숙시켜 나갈 수 있다. 아울러 긍정적 의미의 경쟁은 학문의 발전 및 문명의 진보를 가져온다. 바로 여기에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람들 사이의 경쟁이 자리한다. 그러나 부정적 의미에서 경쟁은 인간의 도구화 혹은 가치화라는 측면을 가져온다. 나에게 있어 타인이 더 이상 한 인격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공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 또는 나의 성공에 도움이 돼야만 하는 대상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새로운 논리, 곧 소통의 윤리와 상생의 윤리가 아닌 나를 위해 타인을 희생해야 한다는 일방적 그리고 주입식의 논리가 윤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카이스트 구성원들의 자살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 측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의 자살 이유를 단순히 학업문제로만 설명해선 안 된다. 오히려 그 안에 감춰져 있는, 그것도 윤리라는 미명하에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며 해체시키는 ‘홀로 살아남기’라는 논리에 초점을 두어야할 것이다. 결코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한 인격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인간은 항상 타인과의 관계 하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이며 동시에 사회의 형성자이다. 사회는 개인을 기초로 형성되며 동시에 개인은 사회를 짊어지고 나아간다.
카이스트 학생들과 교수의 죽음 앞에서 참으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오늘의 한국사회가 어떠한 인간상을 갖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자문하게 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