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어 우리는 구세사의 가장 깊은 신비인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빠스카 신비에로 다가가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전례에 흐르는 근복정신은 첫째 영세예비자들의 결정적인 준비단계요 둘째 공동속죄자들의 보속의 기간이며 셋째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40일 봉재라는 말이 의미하듯이「사순절」하면 으레 단식 금육하고 고신 극기하여 세속적인 향락이나 유혹을 피하고 엄제하는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어디까지나 사순절의 목적을 위한 방법에 불과한 것으로 소극적인 일면일 뿐이다 .
지난번 공의회의 전례헌장에서 「사순절은 두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성세의 회상과 성세의 준비를 통해서、또 다른 편으로는 보속을 통해서 신자들로 하여금 어느 때보다 더 큰 열성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면서 빠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케 한다. 따라서 전례에 있어서나 전례교육에 있어서 이 두가지 성격을 더욱 현저하게 드러내야한다」(전례헌장109)고 가르치고 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성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로마6ㆍㆍ3~4) 실로 성세는 인간실존의 변혁인 동시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믿는자 안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순절동안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는 최상의 준비는 모든 신자들이 성서와 전례를 통하여 성세의 은혜를 회상하고 성세때의 결단을 새롭게 해야 함과 동시에 영세 예비자들의 성세를 합당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또 사순절은 우리에게 회개와 보속을 촉구하는 때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하여 언제나 공공연한 외표의 형식을 취하면서 보속을 했다.
그러나 참된 회개와 보속의 정신은 차츰 해박해지고 단식이나 옷을 찟는 등 여러가지 형식만 남게 됨으로써 구약성서를 보면 「단식하고 통곡하라」「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 너희하느님 야훼에게 돌아오라」고 하여 진심을 회개할 것을 경고했다. 이는 현대의 하느님의 백성에게도 실로 합당한 경고이다. 회개는 우리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임을 절감해야 한다.
또 이 시대의 증표로 보아 우리의 회개는 개개인의 사사로운 죄악의 차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인류적 국민적 사회적인 공동체적 죄악의 차원에서의 회개여야 한다.
민족들과 국가 간의 전쟁이나 불화 국제도의의 쇠로 현대의무신론 유물론 신에 대한 불신 인간에 대한 불신불의와 불법과 부조리 이기주의 향락주의 금권주의 물질주의 모든 윤리학 사회악 제도학 구조악 에 대하여도 우리는 모두가 공번자 방관자 무관심자로서 공동체적으로 회개하여야 다.
따라서 현대의 진정한 회개는 개인적인 회개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적 연대적 회개여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남은 우리자신의 잘못 뿐만 아니라 인류와 국민과 대중과 집단이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해서도 공동체적인 속죄의 정신과 그 실천을 통한 건전한 회개로서 마음과 생활을 혁신할 때만이 루어지는 것이다.
사순절동안 교회가 특별히 희생과 보속과 단식과 금육 등을 요구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오는 우리의 시련과 고통과 유혹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감으로써 우리의 전 생활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고 회개와 보속으로 모든 죄악에서 죽고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생활이 바쁘고 타에 괘념할 여유가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생활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여 빠스카의 신비에로 나아갈 수 있겠금 각자의 영성과 생활을 온전히 가다듬고 준비하여야 한다.
또 우리는 사순절동안의 극기와 보속과 희생이나 고행을 단순히 교회법의 명령적인 행위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엄정히 지키신 사순 그대로를 기꺼이 본받아 스스로 준행하려는 자의적인 원의와 생활의 의육이 결여된 것이며 빠스카 신비를 이해치 못하는 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아무리 우리의 고신과 극기나 보속과 희생이 외적 형식적으로는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랑에서 출발하여 끝내는 사랑으로 확산되거나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오히려 자신의 건강이나 유익에만 거칠뿐이다.따라서 고신과 극기보다는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더욱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수고 수난하심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이 동참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요긴한 것 까지도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사순절의 바른 정신이며 생활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신과 극기보속 희생 등의 모든 행위는 오직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하고 사랑의 실천으로 열매 맺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믿음이 아무 소용이 없다면 사랑이 없는 고신극기 보속 희생도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성목요일 아침 미사 때까지 우리는 사순절의 의미를 더욱 깨닫고 생활을 다시 한 번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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