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났다. 나는 선조 때부터 유교집안의 완고하고 엄격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런데 지금의 달성국민학교인 달성군립보통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나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친구의 집은 매우 철저한 가톨릭 집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가면서 교회에 따라가 설교를 들었고 어린 생각에도 정말 좋다는 마음과 흥미가 났다.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의 꾸중을 들으면서도「주의 기도」를 익혔고 성가도 배웠다. 그렇지만 자유없이 몰래 다니느라 항상 불안한 나날이었다. 때로는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도 하며 친구의 부모를 부러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후 6학년 14살 되던 때 불행하게도 어머니를 여위었다.
어머니를 잃었다는 어린 마음의 상처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외롭고 아팠다. 내가 어머니를 그리며 애닮에게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완고하시던 아버지께도 측은해 보였던지 상급학교에 시험을 치를 허락과 신앙의 자유를 주셨다.
그대부터 나는 학교공부에 치중하고 성경을 읽는데 몰두함으로써 차츰 모든 슬픈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친구와 같이 교회에 가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 아버지 하느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또다시 시련에 부딪혔다. 19살이 되던 해 어른들의 권유와 강요에 못 이겨 결혼을 하게 됐다. 시댁은 모두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나는 절망감을 느꼈지만 항상 주님을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지냈다.
따라서 사찰구경을 가더라도 법당 안에 들어간 일은 없었다.
이렇게 마음으로만 주님을 모시고 지내던 중 39살 되던 해 집안에 큰 환난이 겹쳐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하소연과 더불어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됐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어른들 몰래 1주일만이라도 새벽 기도에 나갈 수 있게 졸랐고 반허락을 받았다. 허락을 받은 것만도 황송해서 눈 오는 겨울 새벽 4시에 불도 켜지 못하고 준비했고 아침밥 준비에 늦을세라 허둥대던 1주일을 끝으로 어른들의 반대를 풀지못하고 신앙생활을 중단했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에『언젠가 나이가 많아지고 자유가 생기면 꼭 성당에 나갈 것』을 결심했다.
그런데 5년 전 남편이 병환으로 눕게 됐다 이때 또다시 나는 성당에 나갈 뜻을 남편에게 밝혔다. 그분 역시 쾌히 승낙을 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신앙생활을 반대해온 남편이지만 마지막 순간 승낙을 하셨기에 세상을 떠날 때 남편에게 대세를 주었다. 그의 혼도 아버지 하느님 곁으로 가게 됐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의 서운함도 사라져버렸고 이때부터는 열심히 성당에 나갈 수 있게 됐다.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타의든 간에 지금까지 하느님을 찾아오지 못한 나를 저버리지 않고 끝내 주님의 엄숙한 성전으로 인도하셨다. 진정한 자유 속에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지금 이렇게 많은 주님의 은총 속에서도 아버지의 진리와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못하고 있음이 안타기만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