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당이 어떤 곳인지 처음 알기는 12살 때였다。같은 반의 친구가 성당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이때 나의 집안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불교를 열심히 믿는 가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이 나서 난생 처음 성당이란 데를 가보았다。아마 그때의 성당이 지금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성당이었는것 같다。그때 처음으로본 상당의 웅장한 모습과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그 뒤 나는 부모의 꾸중과 반대에도 개의치 않고 아침일찍 일어나 미사에 참례하고 학교에 다녀와서는 빠짐없이 교리반에 다녔다。이렇게 1년을 다닌 후 성모승천대축일에 성세성사를 받았다。그리고 또 1년후에는 견진성사도 받았다。그러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 집은 너무도 가난하여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나는 공부보다도 부모님을 돕기로하고 15살이란 어린나이로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그 후 10년이란 직장 생활 속에서도 항상 주님께 의지하는 마음으로 고달픈 몸과 마음을 달래었다。정말 주님의 은총이 없었더라면 몇 번이나 좌절속에 탈선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주님의 뜻이라 믿고 주님께 의지하며 생활해오는 동안 어미니도 나의 직장친구 3명도 세례를 받게됐다。나는 너무나 기뻤다。
또한 나는 직장에서의 야간작업을 마친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아침일찍 성당에 나와서 주님과 대화를 나눴다。모든 나의 고통과 설움-가난과 못 배웠다는 가슴 아픔을 천주님께 털어놓곤 했다。그러면 너무나 평온한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다。그러다 내 나이 26살 되던 해 수녀원에 가고자 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을 하게 됐다。교우집으로 시집가기를 희망한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나의 대모의 중매로 이듬해 1월 12일 3대째 교우 집안인 지금의 남편과 남산성당에서 혼배성사를 받았다。우리부부는 주님의 은총과 안배속에 10년이란 세월을 말다툼 한번 없이 이해와 사랑 속에 벌써 네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집안형편은 넉넉지 못했지만 주님의 뜻대로 우리부부는 모든 어려움과 시련속에 굳세게 살아왔다。그러나 몇 년 전 생활의 어려움에 쫓기다 1년가량 냉담하게 됐다。우연히 주일미사에 한번 결한 것이 시초가 되어 냉담케 됐으나 그해 가을 판공성사를 봄으로써 주님께 용서를 청하고 그동안 겪은 불안과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주님의 품안에 다시 안긴 우리 가정은 이제 우리의 자녀를 주님의 착한 자녀로 키우는데 열중하며 이웃과도 많은 형제 자매를 맺도록 주님의 은총을 다시 한번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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