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소리말고 내게도 술좀 사줘요. 나도 한번 취해보고 싶어요』
『아니! 왜그래? 천사처럼 착한 아가씨가 화를 다내고. 어떻게 된일인지 얘기나해봐』
『나 술한잔 먹구 얘기할께요』
『그렇다면 한잔해야지. 李양 덕분에 나도 한잔하고…』
쉴새없니 몇잔을 들이키던 그녀는 어느사이엔가 도톰한 얼굴에 매화꽃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양 무슨일이야?어서 얘기해봐요』
『나 술좀 더줘요. 오늘은 잔뜩 취해보고 싶단말에요』
『안돼 더먹어서는 안돼. 몸을 생각해야지? 처녀가 술을 마시고 다니면 남들은 처녀가 실연했다고 웃어대지 않겠나?』
『아무래도 좋아요. 피장파장인 걸요』
『자 얘기해봐요. 내게 못할 말이 뭐가있나? 오빠처럼 생각하고 아니면 친구처럼 생각해도 좋아』
『오빠? 친구? 좋았어요. 하지만 내가 얘길하게되면 또 실망할걸. 실망하면 안돼요』
『글쎄 무슨 말인가?』
『벌써 다끝났어요. 다 끝났단 말예요. 그것도 반액을 할인해서 말예요. 이제 됐어요? 그리고 언니친구에게 들은 얘긴데 언니는 멀리 갔대요』
『아니!그럼 자살이라도 했단말인가?』
『죽긴 왜죽어요? 그 악질적인 여자가 왜 죽겠어요? 자기의 옛애인과 오늘 오전 열시경 전라도로 갔대요』
『휴우 알았다. 그만 그만하자』
천정이 돌아가고 또 내가 돌아간다. 누군가가 날 부축하여 자리에 눕히고 있었다.
『아니! 당신이 당신이 와주었군. 고마워. 이젠 어떤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는다。놓치지 않는다。놓치지 않아. 당신을 괴롭히던 그놈도 난 죽이겠다。죽인다. 아 어쩌면 어쩌면 이다지도 나에겐 원수들만 늘어난단말인가?』
『오빠 저예요. 이양이란 말예요. 정신차리세요. 오빠』
『아냐 이젠 속지않는다. 속지않아. 속지않는단 말이야』
난 타는듯한 갈증을 느끼며 몸을 비틀었다.<물 물 물을 달라>며 몇번인가를 소리치다 몸을 비틀어 일으키는 순간 난 다시한번 놀라고 있었다. 거기엔 실오라기하나 걸치지않은 두 인간이 멋대로 딩굴어져 있었기때문이다. 난 가녀린 탄성과 함께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자, 실날같은 반눈을 뜨며 그녀는 나의 가슴속으로 바짝 기어들어왔다.
『이제 정신좀 드세요?』『응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일인가?』
『몰라서 물으세요? 변명하시려네』
『정말 모를일이다』
『후회하세요? 후회를 해도 이젠 소용이 없어요』
『안돼 안될말이다』
『안돼도 할수없고 돼도 할 수 없어요。애당초 난 자기를 사랑했고 또 이렇게된 이상에는 물러설수 없어요. 주인의 밥상을 핥아 먹고 달아나는 얌전한 똥개보다는 다소 건들거리긴해도 길든 세퍼드가 나을걸요』
『그럼 넌 이렇게 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구만. 역시 여자란 독탈한 것이군』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사랑은 전쟁이니까요』
『네가 나를 좋아하는것은 네 자유지만 멀지않은 날 후회하게될걸。그때면 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먼곳으로 사라져 갈테니까. 그때 가서는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을거야. 정말 오늘일은 없었던걸로 하자。널 위해서다』
『좋아요. 정말 후회하는 따위의 일은 없을 거예요』
한번 떠난 여인은 두번다시 돌아올줄 몰랐고 소리없는 연륜만이 쌓여 가을이 무스익어 가고있었다.책과 의약품 그리고 화공약품들의 탁한 오염속에서의 이십여일이 지나갔다. 각종 화공학의 서적들을 탐독하고 몇번인가의 실험을 거듭한 결과 무색 마취약을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그 내음은 짙은 오렌지 내음과도 같이 향긋한 풍미를 풍기는 감미로움이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