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겪어야 하는게 계절병 탓일까. 잠시업무를 떠나고 싶어서 토요일 오후 소록도를 향해 순천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는 왠지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비도 그치고 어두움이 내리깔릴 무렵 녹동행 일반 버스를 타고 8시20분경에 바닷내음이 물씬나는 부둣가에 도착했다. 5분정도 배를 타고 소록도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일반인들을 다소간 통제를 한 절차를 밞고 마중 나오신 수녀님 집으로 갔다. 만남의 기쁨과 내일을 위해 하룻밤을 편히 쉬고 상쾌한 가분으로 맞이한 주님의 날이었다. 기도하고 밥 먹고 8시30분 미사라는 얘기를 듣고 7시30분정도에 수녀원에서 출발했다.
반시간정도 걸어서 당당으로 향하는 그 길은 좋은 묵상의 길 갈 기도했다. 바다와 산과 들꽃들、황토길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마치도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조심스레 열면서 성당에 도착한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모습에 놀란 것이 결코 아니다. 아직 미사시간이 40분정도 남았는데 성당에서 기도 드리는 많은 사람들에 놀랐다. 성당밖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주님의 날을 기쁘게 맞이하는 모습들이었다. 수녀님께 여쭈었더니 새벽부터 오셔서 로사리오를 바치고 기도한다고 하셨다.
정말 미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로사리오를 바치고 한국 순교 복자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난 내가 참여해온, 소위 도시의 주일을 생각했다. 미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마저도 돋기 어려운 주일 미사가 시작되고 심지어 성찬예식이 시작되어서 들어오는 사람 복음을 전하러 가자는 주례사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당 밖을 나가는 형제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사제의 말을 듣는 것조차도 바쁠 정도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일까? 미사중에 와서 미사 중에 나가는 한 교우에게『성당이 영화관입니까. 미사가 재미없는 영화 프로입니까』하시던 어느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우리는 성한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바쁘게 가야만 했을까. 성하지 못한 그들은 재빨리 갈수 가없어서 새벽부터 서둘렀어야 했을까. 앞자리가 항상 비어있는 우리네들 성당이지만 그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주님가까이에서 차례로 줄지어 앉았다. 영성체를 하고 돌아오면서도 발바닥이 없어서 비틀비틀하는 형제를 어깨를 끼고 들어왔다. 의자도 아닌 마룻바닥에 손과 발이 성치 못해 엉덩이부터 일어나면서도 주의 만찬에 참여한 그들은 너무도 적격이었다. 손바닥이 없으면서도 묵주를 손에든 그들은 차라리 장미꽃을 어루만지고 향내 맡는 듯했다 미사가 끝나고 성체강복이 있었다. 아마도 그들에게 성체강복은 가장 좋은 약인듯 성체 앞에 엎디어 간절히 구하고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공원을 구경하고 몇 군데 가정방문을 했다. 내 눈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얼굴과 얼굴이 가면 갈수록 떳떳이 웃으면서 걷는 나 자신이 그렇게 죄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 가정을 방문하는 길에 잘 뵈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에 실을 꿰는 분께 수녀님은 실을 꾀어주셨다. 보이지 않는 는 소리로서 알아보는 수녀님을 그들은 너무도 고마워했다.
등을 쓰다듬어주시고 우스개 하시면서 몇 집 신자가정을 방문했다. 성당에 나오는 사람은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가정에서 만난 그들은 그렇게도 할 수 없는 분들이었다. 차라리 팔목에 호미를 메어서 발을 간단다. 주먹으로 옷을 궤멘단다 . 엉덩이로 기어서 다닌단다.
주일이라서 기쁘게 놀러 다닌다며 웃음을 머금은 그 입술이 못난 저를 그래도 인간이라고 찾아주시는 수녀님께 기도로서 보답해야겠다는 그들의 사랑、그 몸으로도 천국을 위해서 살아야지요. 살아야지요. 하시던 삶의 의욕、손도 없으면서 발도 없으면서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어떻게…가슴깊이 한이 맺힌다는 그들의 말이 내 가슴에 꽂히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았다. 죄스러웠다. 손 발 눈 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조화되어 있으면서도 불만투성이였던 나, 쉽게 번복하던 사랑이기가 두려웠다. 정말 우리는 주님께 받은 사랑을 어떻게 베풀어주었는가. 주기는 커녕 누구에게 빼앗길세라 가슴속에 꼭꼭 묶어둔 것만 같았다. 공원에서 보았던 갖가지 아름다운 것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직장에 몸담고 있는 지라 우후에는 돌아와야 만했다.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다시금 반성해 보았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미사를 궐하는 안, 미사시간에 늦어서 미안함을 모르는 우리、나환자라면 고개를 내젓던 우리들이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지도 시기하지도 않았다. 현실은 내게 이런 흉물의 고통을 주셨지만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시는 고통이 없으셨지만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시는 고통이 없으셨으면 부활의 영광도 없듯이 그들도 그 하나만 믿고 산단다. 주여 세상에서 버림받은 저들의 여혼을 거두시어 당신과 함께 부활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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