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겪는 노동의 어려움을 그런식으로 알아 들을 것 같습니까? 노동은 그렇게 사치한 것이 아닙니다』
이말은 지금도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뼈아픈 말로써 서품 받기전 한 노동자에게서 들었다. 나는 이말을 듣고 오늘날까지 다른이와 함께 말을 나누고 상대를 이해 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때 부제로서 교구교육계획에 따라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배우기 위해 영등포 한 철공장에 취직을 한 일이 있었다.
첫날、몇벌 안되는 옷중 제일 허름한 옷으로 일할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쇠냄새와 공원들의 땀냄새로 메스꺼움을 느끼며 공장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게 된 사람은 작업 반장이었다. 그에게서 느낀 첫느낌은 난처한 사람을 받는구나 하는듯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곳 모든 공원들의 옷빛깔은 온통 녹물색으로, 마치 쇳가루로 범벅이 된듯한 모습이었는데 내 얼굴이 꺼멓긴 해도 그들보다는 깨끗한 편에 더구나 옷은 말짱했으니 무슨일을 시켜야 적당할까하는 생각중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후에 안일이지만 나이가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이 거북했단다.
내가 맡은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쇠뭉치 나르는 일이었다. 공장안에는 얼마나 많은 쇳가루가 나르던지 곧 땀이찬 런닝셔츠를 진흙색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내 자신이 그들처럼 되어가는데 작은 기쁨을 느끼며 열심히 날았다. 나보다 십여년이 적은 그들이 일하는데、비록 보조역할이지만 싫지 않게 일했다. 벨소리가 울렸다.
점심시간 이었다.
무엇인가 이들에게서 배우러 온 이상 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위해 그들이 모인곳으로 나도 내 도시락을 가지고 생소한 그들과 함께 앉았다. 나는 내옆 한 두 사람에게 내소개를 하고 함께 점심을 나누었다.
그때 바로 내옆에 있던 사람이 내게 물었다.『장가 드셨소?』
『아뇨』
『그럼 군대엔 다녀오셨겠군요?』
나이가 너무 많다 싶어 하는 질문들이었다.
『예 한 4년됐죠』
『그럼 어디에 계셨오?』
『여기가 처읍입니다』
『아니 그럼 뭐하다 이제 시작하죠?』
나는 대답할 말이 궁해졌다. 사실 그때 견습생들은 봉급이 4천 원이었다. 이 액수는 당시 음식점에서 파는 갈비탕 50그릇 정도의 값어치였다. 그래서 견습생들은 하루 40원을 내야하는 기숙사에서 기거하고 있었던것이다. 결국 나는 대답을 못한채 점심시간을 끝내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지난후였다. 우연한 기회에 내 신분이 드러났고 자신들이 생활을 알려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을때 soremffu 준말이 바로 이 글 첫머리의 말이었다.
역시 우리가 남을 이해하고 상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마치 내 잘못을 꼭집어내는양 아프게 들렸고 오히려 그에게 어떤 상처를 주지않았는가 하며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혹시 내가 생각 하나의 잘못으로 견디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워놓고 자기는 그집에 손가락 하나 대지않는자 (루까11ㆍ46) 라는 책망이 나에게 떨어지지 않을까걱정해본다.
그때 그 친구야! 이 글을 보고 다시만나 더 깊게 많은얘기 나누어 보자!
- 부산 오륜대 피정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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